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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tch /Case 2

슈홉

Kyefii 2016. 11. 16. 16:46

 저녁을 먹고 나오는 길에 너는 가운데가 뻥 뚫린 쇼핑몰의 난간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말했다. 난 꼭 이러고 있으면 형이 날 밀어버리는 상상을 하게되더라. 그래서 나는 뭐 그런 상상을 하냐고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너는 웃으며 대답했지. 형은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잖아요.
 나는 그 말에 순간 당황했지만 태연하게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너한테만 그러는거야 인마. 내 말에 너는 또 웃으면서 난간에서 손을 떼고 내 옆으로 좀 더 가까이 붙어 걸었다. 사실 나는 네 질문에 정말 많은 생각을 했어.

 내 집 앞까지 기어코 데려다주고 꺾어지는 골목길의 모서리에서 팔을 크게 휘두르며 인사하는 너에게 나는 손을 흔들어주는게 고작이었지만 마음 속에서는 끌어안고 보내기 싫었던걸 알까, 생각하면서도 쑥쓰러워 절대 몰랐으면 하는 이기심이 솟았다.
 항상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 네 얼굴을 보면 축축한 내 모습을 잊을 수 있었지만 집에 돌아와 빈 방의 불을 키면 나는 다시 빠르게 눅눅해졌다. 오늘 밤엔 씻은 뒤 침대에 누워 절대로 잊을 수 없던 아까 네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미안함과 동시에 내가 너무 싫어 베개에 얼굴을 처박았다.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너의 사랑. 너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나는 괜히 네가 나를 사랑하는게 너무 말도 안되는 일 같아서 마냥 기쁘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말에 재차 정말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그동안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왔는지 모두 들켜버릴까봐 나는 물어보지도 못하고 좋아한다는 말엔 민망한듯 웃어넘기는게 최선이었다. 나는 왜 얌전히 네 사랑을 받고 기뻐할 수 없을까, 나는 왜이렇게 꼬였을까.
 그건 아마 우리가 너무 반대의 사람이기에 그럴 것이다. 의심이 기본이 되어 늘 경계하고 모두를 적으로 봐야했던 이전을 살아온 내가 너를 만나고 당연한 다정을 받았을 때의 그 낯설음을 넌 절대로 이해할 수 없겠지.

 그렇게 또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나를 또 미워하면서 가로등 아래에 서있던 네 모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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