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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지정

Kyefii 2016. 11. 18. 00:06

 고생 많았다. 남자가 큰 손으로 정국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정국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반짝이는 구두 위로 개미 한마리가 기어가는 것을 쳐다보며 일렁이는 눈에 힘을 주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큼, 풍경에 쉽게 섞일만한 종류의 작은 묘목이 둘의 앞에 박혀있었다. 남들처럼 작은 명패조차 걸고있지 않아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나무는 지민을 기억하는 이를 제외한다면 누구도 그것의 의미를 모를 것이다. 

 정국은 나무 앞에 차분하게 꽃을 내려두는 남자의 행동을 쳐다보다 그의 가자는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를 먼저 떠나는 남자의 발만 쳐다보며 뒤를 따라갔다. 정국은 남자의 옆에서 나란히 걸음을 맞춰 걸었다. 차가 주차된 곳 까지 걸어가는 동안 남자는 정국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대부분 대답을 바라지 않는 말이었지만 던지는 말의 끝은 꼭 정국에게 대답을 바라는 듯 했다.


"어제 밤에 죽었다지?"


 정국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훤히 알고 있는 사건의 전말을 다시한번 자신에게 묻는 것이 역겨워 정국은 애써 쥐어지는 주먹을 풀기 위해 손 끝에 힘을 주어야 했다.


"둘이 친하게 지내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니?"


 친하게 지내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는……. 정국이 생각에 잠긴 동안에도 그는 정국은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여튼. 파트너가 죽었어도 울지도 않고 … "


 너도 참 무정하구나. 그의 한마디에 정국은 뭉그러진 지민에 대한 기억을 뚜렷하게 그릴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민과 대화를 하던 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떠올리며 길을 걷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발을 멈춘 정국에 남자가 뒤돌아 다가와 어깨를 감싸안았다. 아직 어리긴 하네. 남자는 답지않게 다정한 말투로 정국을 부축하며 걸었다. 그것은 아마 만족스러운 일의 마무리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일 것이다.

 차에 올라 타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정국은 창문에 이마를 대고 그날 밤을 마저 떠올렸다.이미 기억에 잠겨 빛을 잃은 눈 위로는 새파랗게 파란 하늘과 거리의 풍경이 흘러갔다.



 남자에게 지민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던 날, 정국은 며칠을 갈등했다.

 지금까지 맡은 의뢰를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을 시작한지도 꽤 시간이 흘렀기에 누군가를 죽였을 때의 죄책감을 마음 속 무덤에 던져버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상이 지민이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유일하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사람. 한참을 고민하여 겨우 결정한 행동 하나에도 후회를 하게 만드는 사람은 지민이 유일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래본 적도 없고 방해가 될까 부러 마음을 주지도 않던 정국의 앞에 불쑥 나타난 지민은 정국을 제 다정함에 물들였다. 낯선 지민의 관심과 시선에 면역된줄 알았으나 그것들에 욕심이 나기 시작했을 때, 정국은 자신이 지민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정국은 지민의 무수한 배려와 사랑을 받으면서도 늘 불안했다. 그것이 늘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고 진짜 같지 않았다. 정말로 나에게 하는 것이 진심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물어봤을 때 돌아올 지민의 대답이 두려운 것도 또 다른 이유였다. 혹시나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이 그냥 몸에 밴 습관들이었다고, 깊은 감정 없이 특별한 의미 없는 다정함이었다고 말할까봐 무서워 정국은 질문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자에게 일을 건네받은 날에 정국은 결심했다.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며 지민에게 그동안 숨겼던 진심을 털어놓자고. 각오는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준 사랑을 의심하였냐며 화를 내어도 좋고 네가 그렇게 생각할 줄 몰랐다고 해도 좋았다. 만나기로 한 바의 테이블에 앉아 자신의 앞에 놓인 술을 단숨에 들이킨 정국이 뜨거워진 입안을 혀로 굴려보다 후, 소리나게 숨을 뱉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보고 있던 지민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정국이 말했다.


"나한테 한 번만 진짜를 줘요"

"…"


 지민은 정국의 말에 미소지으며 손에 들고있던 잔의 술을 마저 비워낸 후 턱을 괴었다. 그리고 맞은 편에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정국을 바라보았다. 나른한 지민의 표정에 정국의 기분이 상했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제발 대답해줘요. 차마 꺼내지 못한 애원이 꾹 닫힌 입 안에서 맴돌았다. 지민은 침묵하고 있는 정국을 한참 쳐다보다가 턱을 받치고 있던 손으로 눈을 가렸다. 피곤했는지 늘 정국의 손을 아프도록 쥐어오던 작은 손이 눈가를 느릿하게 문지르는 동안 지민의 입이 작게 움직였다. 


"안돼"

"왜요"


 그러면 내가 못살 것 같아. 부드럽게 문지르던 손이 말과 함께 멈췄다. 정국의 숨도 순간 멈췄다. 지민의 말에 바에 흐르던 음악도 어수선하게 홀을 가득 채우던 사람들의 대화소리도 음소거를 한 것처럼 귀에서 멀어졌다. 오로지 지민의 진심이 담긴 대답이 정국의 머리 속과 마음 속에 가득 찼다. 처음으로 듣는 물기어린 지민의 목소리는 그동안 봐온 모습과 다르게 약했고, 지쳐있었다.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멈춘 듯 했던 음악도 제 템포를 찾아갔고 사람들의 대화소리도 점점 커져갔다. 정국은 밖에 꺼내놓은 다른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고백할 것이 하나 더 남아있었다. 고민 끝에 테이블 위로 정국이 총을 올려놓았다. 포기하고 싶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형을 죽이라는 일을 받았어요. 비밀을 털어놓는 정국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민은 대답 없이 정국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근데 못하겠어요"

"내가 알아서 할게"

"자살할거에요? 개소리 하지마요"

"아니면 니가 죽을거야 난 그거 못 봐"

"차라리 그게 나아요"

"자꾸 떼 쓸래?"

"이게 어떻게 떼 쓰는거로 보여요?"


 소리치는 정국에 지민이 테이블 위에 버려지듯 놓여진 총을 집어들곤 제 주머니에 넣었다. 정국이 빼앗을 틈도 없이 지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빠져나갔다. 정국이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지민은 멀지 않은 곳에서, 정국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건물 사이의 골목길에서 총을 쥐고는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찬찬히 살펴보다 총알을 확인했다. 총에는 단 하나의 총알도 들어있지 않았다. 정국은 지민에게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낀 지민이 비어있는 탄창을 보이며 정국에게 물었다. 이럴거면서 왜 못되게 굴었어. 그 말에 참던 눈물을 터뜨린 정국이 지민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차라리 도망쳐요. 같이 가자고 하면 갈게요.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알았어"


 지민의 말에 정국이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빨갛게 충혈되어 훌쩍이는 정국의 뺨을 그러쥔 지민이 가볍게 입을 맞췄다. 대신 내가 하자는 대로 하는거야. 정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이 시키는대로 떠밀리듯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정국은 그 어디에서도 지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주 돌봐줄 수 없어 고민 끝에 함께 결정했던 물고기도 어항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텅 빈 어항엔 눈아픈 형광빛 불이 뿌옇게 번졌다. 침실의 방 문을 열었을 땐 처음부터 정국 혼자 사용했던 것처럼 침구도 하나, 슬리퍼도 한 짝, 급하게 열어본 옷장엔 옷부터 옷걸이까지 지민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정국은 힘 없이 거실로 나와 유일하게 남아있는 1인용 소파 중 하나에 앉았다. 맞은 편엔 늘 지민이 앉던 의자가 어둠에 묻혀 외롭게 비어있었다. 지민에게 빼앗긴 총이 없어진 주머니를 쓸어내리다 지민이 왜 마지막에 순순히 제 말을 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지민은 자신이 죽을 것을 예감하고 있던 것이었다. 현장에서도 사소한 행동 속에서 다음을 예측하는 날카로운 관찰력은 지민의 특징이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바에서 평소같지 않게 길게 돌려 말하고, 주머니 속에 손을 찔러넣은 채 망설이는 듯 손을 꼼지락거리는 정국의 모습에서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다면 그것은 지민답지 않은 일이었다. 모른 체 하고싶어도 자꾸만 눈에 걸리는 정국의 이상 행동에 지민은 자연스럽게 정국이 자신을 죽이러 왔음을 예측할 수 있었다. 조심스럽지 못했던 제 행동을 후회하며 정국은 소파에 목이 꺾이도록 기댄 후 눈을 감았다. 마지막까지 지민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그 다정만은 진실이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마음이 터질 것 같았다.



 정국은 그렇게 감쪽같이 사라진 지민과 자신의 총 그리고 밤새 잠들지 못하고 파랗게 밝아오던 새벽의 하늘을 차례대로 떠올리다 부드럽게 멈추는 차의 움직임에 정신을 차렸다. 눈만 굴려 올려다본 지민과 함께 살던 집이 눈에 들어왔다. 가볍게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는 동안 자꾸만 기적을 바라는 자신이 우스워 정국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부질없는 상상을 하며 문고리를 돌렸지만 집은 역시나 고요했다. 햇빛을 크게 들이고 싶다는 지민의 말에 부러 크게 낸 창에서 쏟아지는 빛줄기 사이로는 떠다니는 먼지들이 집안을 채웠다.

 정국은 천천히 지민의 소파로 걸어가 앉아보았다. 길게 늘어진 볕이 자신의 소파를 덮고있었다. 늘 이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사랑을 눌러왔는지. 정국은 아마 평생 알 수 없을, 자신이 모르는 순간에 자신을 바라보던 지민의 눈빛을 상상했다.


보고싶다.


상상의 말미엔 지민이 보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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