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Switch /Case 1

짐슈

Kyefii 2016. 11. 20. 15:13

 둘이 어쩌다 같이 살게되었냐는 말에 대한 가장 노멀한 대답은 돈일 것이다. 둘이 쓰면 좀 더 싸잖아. 그러나 그 밖에 내가 형을 챙기는 이유에 대해서 묻는다면 거기에 대해선 평범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좋아서, 가 평범한 대답이기엔 형의 처지가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자같이 보이지도 않는 집의 대문 근처에서 나는 서성였다. 12월 중순의 날씨는 지랄맞아서 낮에는 얄량한 햇살 덕에 조금 뜨끈하다가도 밤만 되면 매섭기 그지없는 바람이 뺨을 후려갈겼다. 오늘같은 날엔 눈까지 내리는 바람에 기다리는게 이렇게 고역일 수가 없다.
 세워놓은 오토바이에 기대어 물고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기를 썼지만 자꾸만 사라졌다. 남은 손으로 바람막이 삼아 불꽃을 최대한 살려보려고 해도 사방에서 새어들어오는 바람을 막기엔 내 손이 너무 작았다. 결국 포기하고 담배의 끝만 물고 씹어버리려는 것을 간신히 참는다. 유일하게 따뜻하고 축축한 입 안에서 필터는 젖어들고 너덜거리고 마지막엔 그 조각들이 그 안에서 굴러다니는 것 같아 뱉어내고 말았다. 땅바닥에 떨어진 담배는 5초도 안되어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날아가버렸다. 눈으로 쫓을 새도 없었다.

 점점 기다리는 것에 지쳐갈 때 쯤 문이 열렸다. 형은 아침에 본 차림 그대로 그 집에서 나왔다. 휑한 차림새로 나간게 새벽이니 분명 추웠을 법도 한데 두텁게 두른 것 하나 없이 혼자 초겨울 차림새였다. 추위를 타지 않나 생각하지만 집에서는 내 이불까지 끌어다 덮는걸 보면 그런 것도 아닌데 꼭 일을 나가는 날엔 계절도 없이 항상 혼자만 여름이고 가을이었다. 나는 닫혀진 문을 뒤로하고 주머니를 뒤적여 담배를 찾는 형에게 다가갔다. 윤기형! 부르니 귀찮다는 얼굴로 눈짓으로만 대꾸한다. 위에서부터 아래를 쭉 훑어보는 눈에 경계심은 없었다. 그냥 뭐하러왔나 하는 그런.

"왜 나왔냐"
"한두번도 아닌데 뭘요"
"피곤하다. 가자"

 말을거는 바람에 담배 찾던 것을 까먹은 형이 빈 손으로 몸을 돌렸다. 나는 잽싸게 형의 손을 붙잡고 오토바이의 뒷자리에 앉혔다. 차가운지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올려다본다. 하고있던 목도리를 풀러 형의 목에 둘러주는 동안 형은 가만히 둘둘 감기며 올라오는 목도리에 얌전히 얼굴을 파묻었다. 하도 탈색하는 바람에 바랜듯한 색의 형의 머리칼 위로 이따금 달라붙는 눈을 보며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북극여우가 떠올랐다. 조심스럽게 그 머리에 붙은 눈꽃들을 털어내고 형의 뺨을 쥐어보았다. 양 손에 차는 볼이 차갑게 얼어있었다.

"차갑다 완전 얼었네"
"빨리 가자니까..."

 자꾸 가자고 재촉하는 목소리에 잠기운이 배어있어서 정말로 이제는 빨리 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쥐고있던 형의 뺨을 엄지손가락으로 쓰다듬어보다 그의 코 끝까지 올라온 목도리를 살짝 내려 입을 맞췄다. 바람에 다 터버린 까실한 입술부터 말캉한 입 안의 살까지, 자연스럽게 혀를 얽으며 온통 차가운 그 속에서도 안은 따뜻했다.
 형은 정말로 겨울같은 사람이었다.


'Switch > Case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짐슈  (0) 2017.01.06
짐슈  (0) 2016.11.23
짐슈  (0) 2016.11.16
shot  (0) 2016.10.09
part2  (0) 2016.09.26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