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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Kyefii 2016. 12. 12. 12:25

1. 배탈

"형 서울가요?"
"어? 응"

 정국이 새롭게 오뎅을 꺼내며 지민에게 물었다. 지민은 정국의 옆에서 패딩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정국이 먹는걸 보고 있었다. 한참 잘 먹다가 뜬금없이 물어오는 정국에 지민이 한박자 느리게 대답했다. 그렇구나. 정국은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것 처럼 미적지근하게 대답에 반응했다. 손에 쥐고있는 오뎅을 간장에 툭툭 찍어 입에 넣는다. 이미 양 볼 가득 차 있음에도 또 한 입을 문다. 이미 정국의 옆엔 꼬치가 여럿 쌓여있었다. 그에 반해 지민은 두어개가 다였다.

"형 나 국물 좀"
"엉"

 정국의 말에 지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국자를 집어들었다. 종이컵을 집어드는 손이 퍽 작아서 정국은 피식 웃었다. 데일까 무서워 조심조심 컵에 국물을 뜨는게 귀엽기도 하고. 자, 하며 저에게 건네는 컵을 받아들며 올려다본 지민의 코끝이 빨갰다. 춥죠. 정국이 물으니 지민이 대답했다. 오늘 진짜 추운 날이래. 다리를 덜덜 떨며 패딩에 파묻힌 것 마냥 몸을 웅크린 지민을 쳐다보며 정국은 괜히 저도 추운 것 같아서 덩달아 몸을 구겼다.

"공부 잘해서 좋겠다 형은"
"뭐래"
"서울 가면, 방학 때는 내려와요?"
"내려오겠지?"

 또 갑자기 바뀐 대화의 주제에 지민은 정국을 쳐다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정국은 오늘따라 유난히 말똥한 얼굴로 먹기만 하면서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는다. 말을 던져놓고는 대답하면 정국은 또 그렇구나, 하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꼬치를 내려놓은 정국이 종이컵을 잡았다. 12월 중순은 추워서 펄펄 끓고있던 국물을 담아도 금방 식어버린다. 갑자기 목이 메여서 정국은 불을 필요도 없는 국물을 들이켰다. 누가보면 술마시는줄 알겠다. 지민이 웃으며 말을 던졌지만 정국은 웃지 않았다. 가만히 제 손에 쥐고있던 종이컵을 쳐다보다 우그러뜨린다. 구겨진 컵을 발치에 있던 쓰레기통에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이제 가요. 그 말에 지민이 지갑을 꺼냈다. 얼마에요? 구천원. 진짜요?


 다음 날 지민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형 뭐해요. 침대에 엎어져 낄낄거리다 정국의 문자에 바로앉았다. 뭐라고 답할까 고민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답장했다. 침대 누워있는데? 한 오분정도 지났을까 다시 휴대폰이 울린다. 그럼 약좀 사오면 안돼요? 느닷없이 약이라는 말에 정신이 바짝들었다. 진지한 얼굴로 지민이 한글자 한글자 문자를 찍는다.

[어디 아파?]
[배아파요]
[헐]

 정국의 답장에 지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에 걸쳐둔 패딩을 집어들고 지퍼를 목끝까지 올린다. 집 서랍장 어디에 약이 있을텐데, 비상약을 모아둔 서랍을 부시럭거리며 뒤적이니 지민의 엄마가 물었다. 뭐하니? 배아프대서. 몇번 더 뒤져보다 결국 찾지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맨발에 운동화를 구겨신고 집을 나선 지민이 약국으로 향했다. 배아프면 뭘 사야하지, 뭘 찾냐는 약사의 말에 지민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배아플 때 먹는 약 주세요. 소화제와 배탈약을 받아들고 정국의 집으로 걸어가면서 왜 배가 아픈가 생각해보는데 아무래도 어제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었다. 배고프다고 그걸 다 먹게 냅두는게 아니었는데, 말리지 못한 자신이 바보같아서 한숨을 쉰다.

 정국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니 평소와는 확실히 다른 속도로 문을 열어준다. 열린 문틈 새로 본 정국의 얼굴이 꽤 헬쓱해보여서 지민은 속상함에 괜히 화를 냈다. 그니까 왜 그렇게 많이 먹었어. 보자마자 화부터 내는 지민에 울컥한 정국이 지민을 쳐다봤다. 방 문고리를 잡은 채로 지민을 바라보다 정국이 말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쾅하고 닫히는 문에 지민이 뜨악한 표정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무리 속상해도 아픈 사람한테 화를 내다니,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한 것 같아 지민은 제 입을 때렸다. 왜그랬냐 진짜.
 물컵을 들고 방문을 조심스럽게 여니 이불을 뒤집어 쓴 정국이 모로 누워 있었다. 벽을 본 상태로 누워있는 정국의 어깨를 잡아 돌리려는데 버티고 넘어오질 않는다. 고집피우지 말고, 약먹어야지. 뭐라 트집잡을 수도 없는 말에 결국 정국이 힘을 풀었다. 바르게 누운 상태로 일어나진 않기에 지민이 책상에 약과 컵을 내려두고 정국을 안아 일으켰다. 헤드에 힘없이 기댄 정국은 눈만 깜빡였다.

"여기 약 먹구"
"..."
"안추워? 속은 괜찮아?"
"네"
"어제 많이 먹긴 했어 열개가 뭐냐."

 형 지갑 거덜나는줄 알았잖아. 그 말에 정국이 힘없이 웃었다. 사준다면서요. 근데 그만큼 먹을줄 내가 알았냐.

"찬데서 오래 앉아 있고 그래서 그랬나보다"
"이젠 괜찮아요"
"다른거 필요한건 없어?"
"네"

 손에 물컵을 쥐고는 꼼질대던 정국이 말했다. 이제 가도 돼요. 침대 한켠에 앉아있던 지민은 옷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정국을 쳐다보았다. 지민은 대답하지 않다가 옷을 벗었다. 꼭 저마냥 의자에 걸어둔 정국의 패딩 위로 자신의 패딩을 걸어놓는다. 너 자면 그 때 갈게. 산더미처럼 높아진 의자를 빙글 돌려 앉은 지민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가도 된다니까요?"
"내가 불편해서그래"
"걱정도 많네"
"너 아프대서 얼마나 놀랐는줄알아?"
"..."
"알아서 갈테니까 자"

 저렇게 말한 이상 쉽게 고집을 꺾지 않을 지민인걸 알기에 정국은 알았고 대답하곤 컵을 내려두었다. 다시 푹신한 베게에 머리를 눕히고 이불을 끌어다 덮는다. 여전히 지민은 제 시선이 닿는 곳에서 게임같은걸 하고 있었다. 별 도움도 없이 그냥 방 한 구석에서 있을뿐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져서는 정국은 눈을 감았다. 감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그와중에 물은 또 뎁혀서 주는게 지민다워서 정국은 지민이 볼 수 없도록 고개를 돌리고 작게 웃었다. 그러다가도 이러고 지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괜히 킁, 코를 훌쩍였다. 그 소리에 지민이 괜찮냐고 물었지만 정국은 고개만 끄덕였다. 잠긴 목소리로, 신경쓰지 마요. 하고는 습관처럼 몸을 돌려눕는데 지민을 향해 눕고싶다가 그냥 벽을 쳐다보기로 한다. 지민을 본다면 잘 수 없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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