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Switch /Case 1

part1

Kyefii 2016. 9. 26. 19:57

 제니, 너 요즘 손이 통 느리다고. 마마가 일 그렇게 하면 너 잘라버린대. 데이지가 지민의 근처에서 풍선껌을 불며 말했다. 나만큼 이런 일 닥치고 하는사람이 누가있다고 그래? 지민이 덜그럭거리는 유리잔들을 닦아 식기세척기에 넣으며 대답했다. 데이지는 타이트한 유니폼의 단추를 하나 더 풀면서, 아니 그냥 그러더라구. 근데, 너처럼 나같은 아름다운 여자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없거든. 제이미 너 진짜 게이 아냐?

 처음 말을 건 내용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가는 데이지의 수다에 지민은 잠깐 행동을 멈추고, 아니 그냥 사람에 관심이 없는거야. 그렇게 대답하려다 관뒀다. 지민은 마지막 접시를 식기세척기에 넣고, 젖은 손을 마른 수건으로 닦은 후 데이지의 단추를 잠궈주면서 말했다. 이러면 더 안예쁜거 몰라? 그리고 나 자꾸 여자이름으로 부르지마 사람들이 오해한다고. 데이지가 미안한듯 껌을 씹으며 단추를 잠궈주는 지민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제니는 너무 다정한게 흠이야. 조금만 더 키가 컸으면 결혼하자고 했을거야.
 지민은 장난기가 사그라든 데이지를 뒤로하고 지민은 가게의 뒷문으로 빠져나와 스케이트보드를 챙겼다. 커다란 쓰레기통 뒤에 숨겨둔 시든 꽃다발도 챙겼다. 자정이 다지난 오늘은 가장 끔찍하고 외로운 날이 시작된지 4년째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지민의 집은 지민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술집과 가깝다. 좋은 동네는 아니라서 이전에 있던 가게에서 밤늦게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몇번 린치를 당할뻔한 적이 있는 이후로는 무조건 가까운 가게를 고르게 되었다. 다만 그렇게 되다보니 건전한 가게는 몇개 없고 몇몇군데의 스트립쇼를 하는 바, 밤늦게 가벼운 옷차림으로 서빙하는 웨이트리스가 있는 24시간 카페가 남아있었다. 그나마 카페가 낫지. 그래서 지민은 이제는 흐릿해진 지문이 생생히 느껴질만큼, 손이 물에 퉁퉁 불도록 설거지를 하게되었다. 카페ㅡ라고는 하지만 그닥 카페같지 않은ㅡ에는 무서운 사내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가끔 짐을 옮기러 매장에 나갈 때마다 지민은 예전의 트라우마때문에 조금 고생을 해야했고 사람들과 마주하지 않는 주방을 고마워했다.


 내일은 비가오려나, 공기가 축축하다고 생각했다. 스케이트보드는 새벽엔 시끄럽기때문에 잘 타지 않는다. 어느순간부터 눈치를 많이 보기 시작했다. 아마 부모님의 교통사고 이후부터, 지민을 감싸는 보호가 사라진 날 부터 그랬을 것이다.

 친구때문에 일이 생겨 함께 마트에 못가겠다고 한 날, 가족들은 차가 고장난 줄도 모르고 도로를 달리는 중에 맞은편의 자동차를 피하려다 사고를 당했다. 차안에 타고있던 가족들은 즉사했고 꽤나 큰 사고라 지역뉴스에도 짧게나마 소개되었다. 지민은 친구와 웃으며 게임을 하다가 급하게 울리는 전화를 받고 그자리에서 기절했다. 친구는 기절한 지민을 깨우다 아랫층에서 자신을 급하게 부르는 부모님의 목소리에 거실로 내려갔고 거기서 지민의 가족이 즉사했다는 브레이킹 뉴스를 보았다.

 그래서, 이렇게 되었다.

 지민은 말없이 계단을 올라가며 지난 4년을 생각했다. 재수없다고 말하기엔 스케일이 좀 큰 불운이었다. 이렇게 된걸 어쩌라고. 이제는 무덤덤하게 생각하고는 있지만 4년전의 지민은 어렸다.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었고, 친척집에 잠시 들어가있기도 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돌아왔다. 이해안가는 행동들 투성이었다. 그나마 가장 마지막으로 부모님의 온기가 남아있는 곳이어서? 동생이 덕지덕지 붙여놓은 밴드 포스터들이 남아있어서? 이제 부모님의 방에는 먼지가 가득해서 들어갈 수도 없고 동생의 방에 붙어있던 포스터들은 바닥에 떨어져있다.


 아무도 없는 집에 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막 이사 왔을 때 산 가구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거실이 나온다. 방문을 열고, 이제는 없으면 정말 죽어버릴 것 같은 하나의 부적이 되어버린 스케이트보드를 침대 옆에 세워둔다. 침대가 있지만 마지막으로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서 잔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눈만 감으면 교통사고 나던 그 날이 생각나서,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다는 것은 더이상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늘 티비를 켜뒀다. 끝이 좀 닳고 헤진 담요를 발치에 덮어두고 가죽도 군데군데 닳은 쇼파에 모로 누워서 밤늦게 하는 고전영화들, 지루한 영화들만 보다가 그렇게 겨우 잠드는 것이다.

외로워.

 지민은 문득 밀려오는 외로움을 연례행사처럼 넘기며 눈을 감았다. 시계는 4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지금 잠들어봤자 어차피 깊게 잘 수도 없는 잠을 억지로 청했다. 덤덤하게 넘기는 척 했지만 사실 지민은 스스로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잔뜩 발밑까지 차오른 외로움은 어딜 가든 지민을 잠식했다. 항상 외로웠다.


'Switch > Case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짐슈  (0) 2016.11.23
짐슈  (0) 2016.11.20
짐슈  (0) 2016.11.16
shot  (0) 2016.10.09
part2  (0) 2016.09.26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