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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tch /Case 1

part2

Kyefii 2016. 9. 26. 23:17


 캐스퍼는 뛰었다. 뛰고 또 뛰어서 모퉁이를 돌아 커다란 쓰레기 수거함 옆에 몸을 숨겼다. 달리는 와중에도 놓치지 않으려 세게 움켜쥔 지폐가 온통 구겨져 찢어질 듯 헤졌다.
 오늘은 일진이 좋은 날은 아니었다. 얌전히 구멍 내주고 돈 받고, 약을 예약받은 뒤 조용히 사라지려했을 뿐인데 이 덩어리새끼가 욕심을 부렸다. 옷을 걸치려는 캐스퍼의 허리를 끌어안고 역겹게 상처난 날개뼈에 입술을 묻기에 그대로 몸을 돌려 면상에 주먹을 꽂았다. 워낙에 얇은 허리였던지라 물살이 덕지덕지 붙은 덩치의 팔뚝은 그를 꽉 안지 못했고 덕분에 빠져나오기 수월했다. 다만 품에서는 쉽게 탈출했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맞은 것에 열이 받았는지 원래 줘야하는 돈도 주지 않으려 하기에 캐스퍼는 협탁위에 아까까지 주려던 돈을 들고 도망쳤다.

 캐스퍼는 손 안에 쥔 10달러짜리 다섯장을 보면서 고개를 돌리고 퉤, 소리나도록 침을 뱉었다. 돈때문에, 그래도 살으려고 내가 이렇게 뛰면서 살아야하다니. 자신의 꼴에 한숨이 나왔지만 배에서 나는 소리에 구겨진 돈을 정성스럽게 폈다.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고개만 내밀어 길을 살핀다 찾다가 지쳤는지 놈은 없고 여느 때 처럼 후드를 뒤집어 쓴 양아치 몇명만이 길을 걸어다녔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 옷깃을 세워 최대한 얼굴을 가린 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샌드위치를 사고 길 가다 아무 벤치에 앉아 먹은 뒤, 남은 돈은 4층 맨 오른쪽에 사는 주인에게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캐스퍼는, 그니까 윤기의 별명인 캐스퍼는 처음으로 약을 팔아 돈을 가져다 주었을 때 브로커가 지어준 것으로, 시퍼렇게 질려서 유령같이 서늘하게 생긴 주제에 저보다 키는 작은게 귀여웠는지 꼬마 유령이라며 유치하게 캐릭터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윤기는 처음엔 그게 뭐냐며 투덜거렸지만 그나마 자신에게 잘해주던 그가 총에 맞아 몇일 뒤 골목에서 널부러져있는 것을 보고 이후엔 순순히 그가 준 별명을 말하고 다녔다. 은근히 추억과 잔정에 약해서, 언젠가 거래하던 정키 한명이 넌 누구냐고 물었을 때 윤기는 한참을 망설이다 캐스퍼라고 답하기도 했다.

 기억과 잔정이 많아서, 그리고 그것들에 약해서.

 윤기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말로는 왜 그러냐며 투덜대지만 호의에 약한 사람. 애당초 이국에 온게 자기 의지도 아니었고, 마주친 사람마다 온통 배신뿐이었으니 그렇게 경계심이 많다가도 손길이 관심이 고파서 결국 미끼를 무는.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소매치기로 구한 꽤 고급스러운 라이터를 껐다 키며 윤기는 생각하곤 했다. 제 인생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는지, 몸을 팔고 오는 날엔 왜 제 앞엔 모조리 썩어빠진 계단만 있는지 원망하며 담배를 태웠다.

 윤기의 첫 경험은 자신이 있던 보육원의 원장이었는데 그는 정말 악질 중 악질이어서 어린 애의 마음을 이용해 온갖 추잡한 짓을 했었다. 밥도 제대로 못먹어 마른 아이의 허벅지를 쓰다듬고 블로우잡을 시키며 칭찬했다.
 다만 머리가 좋았던 윤기는 그것들이 제 약해빠진 마음이 온정에 눈이 멀어 저지른 실수임을 깨달았다. 심지어 자기가 게이인걸 자각하고 있던 때라 하루 빨리 그 곳을 벗어나고 싶어하던 찰나 그의 발치에 줄 하나가 떨어졌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외국인이 저를 데려간다기에 모두 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세상에서 제일 운이 없던 윤기는 고작 아주 넓은 진흙탕 가운데에서 한 발짝 발을 뗐을 뿐이다. 애석하게도 그의 앞에 떨어졌던 줄은 썩은 줄이었다.

 윤기는 말도 통하지 않는 범죄율 높은 동네에서 눈 뜨고 생활하다보니 훔치는건 일상이고 가끔은 총맞을 각오도 하면서 나쁜 일을 배웠다. 나쁜 일을 하고 나쁜 생각을 하고, 생각이 바뀌었을 땐 이미 몸은 잘라내고 싶은 부분 투성이었다. 험하게 굴린 허리 아래는 저릿하고 먹는 것도 거르며 푼돈을 모아 제가 팔던 약을 꽂아넣느라 팔뚝에는 바늘자국이 군데군데 남았다.

 약한게 죄인가? 그는 생각한다. 이길 수 없고 결국 또 마음에 무너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태어날 때부터 없던 것들이 제 속에 심어놓은 결핍은 무슨 노력을 해도 채워지지 않았다. 약을 사기 위해 지폐 한두장을 모으던 것 처럼 여지껏 일부러 속아가며 모은 상대의 감정들은 가짜였다. 진짜 하나 살 수 없는 위조지폐들이었다.


 윤기는 손을 뻗어 제 침대 아래의 작은 비닐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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