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국은 졸업식에 오지 않았다. 담임은 손에 남은 전정국의 졸업장을 흔들어보이며 졸업식 날에 오지않는건 좀 너무하지않냐며 쓸모없는 소리를 했다. 어쨌든 전달해주긴 해야했으니 사람을 찾는지 반을 한번 빙 둘러보다가 나에게 멈췄다. 그리고 내이름을 부르며 졸업장을 휘적였다. 너 정국이랑 좀 붙어다니는 사이였지? 네가 가져다줘라.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교탁으로 걸어가 걔의 것을 받아 자리로 돌아왔다. 담임이 남은 말들을 하는 동안 나는 남의 졸업장을 열어봤다. 내 것과 다르지않게 내용도 똑같지만 받는이의 이름만이 달랐다. 전정국. 나는 그 이름을 손가락으로 한번 문질거리다 덮었다. 살짝 까실한 졸업장 커버의 표면엔 먼지가 잔뜩 붙었다. 졸업식이면 대부분이 그렇듯 찾아온 가족과 점심을 먹고 다시 집에 ..
불쌍한 세대였다. 숨 터트려올 날만 기다리다 겨우 뱃속에서 빠져나와 붙어있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을 때 본 것들은 모두 메마른 것들 뿐이었다. 공기 중에 섞인 모래들과 바닥에 깔린 굵은 돌들, 그리고 풀 한 포기 붙어있지 않은 딱딱하고 바스러질 것 같은 절벽이 그랬다. 지민은 태어나서 세상을 많이 보고 자랄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그가 자라온 환경에서 본 것들은 하나같이 축축함이라곤 전혀 없었다. 발 끝에 채이는 흙을 한 줌 쥐어보다 움켜쥔 손을 풀어헤치자 금세 바람에 쓸려 날아간다. 조회시간은 지루했다. 세상이 망한지 몇세기가 지났다고 했다. 지민은 태어난 순간부터 ‘타운’의 아이였고 지민의 부모도 지구가 망한 이후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민이 아는 세상은 듣는 것도 보는 것도 모두 똑같은 황량..
윤기는 시큰거리는 제 발목을 보며 예전에 교통사고로 잠깐 다리에 깁스를 하고 살아야 했던 때를 떠올렸다. 움직이는 것도 불편했고 병원밥은 먹을만 했지만 모든게 따분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은 제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디를 잠깐 이동하더라도 지민의 부축이 필요했고 그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불편해 속으로 짜증만 쌓여갔다. 물론 그 방향은 자기 자신이었다. 지금 윤기는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눈앞의 지민은 가끔, 정말 가끔 일을 저지르고 제발이 저릴 때마다 짓는 표정을 하고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의 눈은 괜히 창가를 보고 맨날 짧다고 놀려대던 손가락은 아랫 입술을 만지작거리면서, 입술은 불쌍하게도 지민의 앞니에 계속 씹혀진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