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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자리를 박차고 술집을 나가는 지민에 술을 따르던 태형의 손이 멈췄다. 야 넘친다! 놀란 소리에 저도 당황했는지 그 작은 소주잔에 병을 채로 부어버린 태형이 연신 미안하다 사과를 하곤 이미 사라진 지민의 뒤를 쫒았다. 지민은 멀리가지는 못하고 가게 앞의 가로등에서 담배를 물고 틱틱대며 가스가 다 닳은 라이터에 성을 내고 있었다. 불 붙여줘? 태형이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지민이 결국 바닥에 라이터를 내던지고는 태형을 쳐다보았다 바닥에 라이터가 나뒹구는 소리는 오토바이 소리에 묻혀 들리지도않았다. 지민은 태형을 쳐다보다마자 화를 냈다. 야 너는 어떻게 그럴수있냐? 태형이 놀라 살짝 뒷걸음질쳤다. 뭐가. 내가 지난동안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니가 이럴 수 있냐고. 속사포처럼 제 속상함을 뱉어내는 지민에 ..
지민이 내민 선물에 나는 좀 놀랐다.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도 이건 좀 무리였을텐데. 속으로만 생각하고 앞에서는 일부러 장난스럽게 굴었다. 몸 어디 뭐 하나 판거 아니야? 놀리는데 거기에 대고 지민은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웃으면서 남은 목숨이 걱정되긴 한다고 받아쳤었다. 그러고 며칠 뒤 집에 찾아갔을 때 자주 보이던 물건들이 몇개 없어진 것 같아 물으니, 뭐라고 정확하게 대답하지는 않고 턱 끝으로 내 손을 가리켰다. 다 그거에 갈아 넣었어요. 그 말에 네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다시 들여다 보았다. 뭘 팔긴 팔았구나 싶어 뭔가 찡하다가도 머리 어딘가 구석은 제멋대로 굴러갔다.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이게 주고 싶었나, 고맙긴하다만. “생각보다 낭만적이다 너” “내가요?” “그냥 소설 같아서” 반지를..
시계를 힐끔 쳐다보았다. 3을 가리키는 바늘에 윤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준비를 마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휴대폰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긴 바늘이 6을 가리킬 때 벨이 울었다. 전화를 받아든 윤기의 귓가에 지민의 목소리가 말했다. 이제 와도 돼. 윤기는 알았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차키를 챙겨 집을 나왔다. 도어락 닫히는 소리가 빈 오피스텔의 복도에 울렸다. 지민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윤기는 남들은 어떻게 그렇게 높은 발판을 준비해올까 고민했다. 그는 지민의 재능을 알았다. 충분히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이 보여질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도대체 무엇을 해야할까 속이 탔다. 대본이란 대본은 잔뜩 끌어다모아 가져다주고 의기소침..
윤기는 울리는 휴대폰을 한번 힐끗 쳐다보고 말았다. 맞은편의 남준이 물었다. 전화오는거 아니에요? 어 아냐. 대답했지만 계속 신경에 쓰이는지 테이블에서 떨다못해 굴러다니는 휴대폰을 쳐다보는 남준의 시선에 못이겨 결국 집어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조용한 공간이다 싶은 곳에 다다르니 진동은 끊겨있었다. 부재중 통화 3통 이라는 텍스트가 화면에 떴다. 이걸 다시 걸어야하나 고민하던 찰나 휴대폰이 짧게 울린다. 메세지였다. 윤기는 확인할까 망설였다. 요즘 세상은 너무 많은걸 드러나게 한다. 답장하고싶지 않은데 내용은 궁금해서 보고싶었다. 하지만 읽었을 때 사라질 숫자가 신경쓰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결국 눈 딱 감고 메세지를 터치했다. 노랗게 뜨는 화면에 둥실 메세지가 떠올랐다. [점심은 먹..
둘이 어쩌다 같이 살게되었냐는 말에 대한 가장 노멀한 대답은 돈일 것이다. 둘이 쓰면 좀 더 싸잖아. 그러나 그 밖에 내가 형을 챙기는 이유에 대해서 묻는다면 거기에 대해선 평범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좋아서, 가 평범한 대답이기엔 형의 처지가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자같이 보이지도 않는 집의 대문 근처에서 나는 서성였다. 12월 중순의 날씨는 지랄맞아서 낮에는 얄량한 햇살 덕에 조금 뜨끈하다가도 밤만 되면 매섭기 그지없는 바람이 뺨을 후려갈겼다. 오늘같은 날엔 눈까지 내리는 바람에 기다리는게 이렇게 고역일 수가 없다. 세워놓은 오토바이에 기대어 물고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기를 썼지만 자꾸만 사라졌다. 남은 손으로 바람막이 삼아 불꽃을 최대한 살려보려고 해도 사방에서 새어들어오는 바람을..
윤기는 시큰거리는 제 발목을 보며 예전에 교통사고로 잠깐 다리에 깁스를 하고 살아야 했던 때를 떠올렸다. 움직이는 것도 불편했고 병원밥은 먹을만 했지만 모든게 따분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은 제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디를 잠깐 이동하더라도 지민의 부축이 필요했고 그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불편해 속으로 짜증만 쌓여갔다. 물론 그 방향은 자기 자신이었다. 지금 윤기는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눈앞의 지민은 가끔, 정말 가끔 일을 저지르고 제발이 저릴 때마다 짓는 표정을 하고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의 눈은 괜히 창가를 보고 맨날 짧다고 놀려대던 손가락은 아랫 입술을 만지작거리면서, 입술은 불쌍하게도 지민의 앞니에 계속 씹혀진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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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퍼는 뛰었다. 뛰고 또 뛰어서 모퉁이를 돌아 커다란 쓰레기 수거함 옆에 몸을 숨겼다. 달리는 와중에도 놓치지 않으려 세게 움켜쥔 지폐가 온통 구겨져 찢어질 듯 헤졌다. 오늘은 일진이 좋은 날은 아니었다. 얌전히 구멍 내주고 돈 받고, 약을 예약받은 뒤 조용히 사라지려했을 뿐인데 이 덩어리새끼가 욕심을 부렸다. 옷을 걸치려는 캐스퍼의 허리를 끌어안고 역겹게 상처난 날개뼈에 입술을 묻기에 그대로 몸을 돌려 면상에 주먹을 꽂았다. 워낙에 얇은 허리였던지라 물살이 덕지덕지 붙은 덩치의 팔뚝은 그를 꽉 안지 못했고 덕분에 빠져나오기 수월했다. 다만 품에서는 쉽게 탈출했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맞은 것에 열이 받았는지 원래 줘야하는 돈도 주지 않으려 하기에 캐스퍼는 협탁위에 아까까지 주려던 돈을 들고 도망쳤다..
제니, 너 요즘 손이 통 느리다고. 마마가 일 그렇게 하면 너 잘라버린대. 데이지가 지민의 근처에서 풍선껌을 불며 말했다. 나만큼 이런 일 닥치고 하는사람이 누가있다고 그래? 지민이 덜그럭거리는 유리잔들을 닦아 식기세척기에 넣으며 대답했다. 데이지는 타이트한 유니폼의 단추를 하나 더 풀면서, 아니 그냥 그러더라구. 근데, 너처럼 나같은 아름다운 여자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없거든. 제이미 너 진짜 게이 아냐? 처음 말을 건 내용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가는 데이지의 수다에 지민은 잠깐 행동을 멈추고, 아니 그냥 사람에 관심이 없는거야. 그렇게 대답하려다 관뒀다. 지민은 마지막 접시를 식기세척기에 넣고, 젖은 손을 마른 수건으로 닦은 후 데이지의 단추를 잠궈주면서 말했다. 이러면 더 안예쁜거 몰라?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