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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efii 2016. 11. 16. 16:51

 전정국은 졸업식에 오지 않았다. 담임은 손에 남은 전정국의 졸업장을 흔들어보이며 졸업식 날에 오지않는건 좀 너무하지않냐며 쓸모없는 소리를 했다. 어쨌든 전달해주긴 해야했으니 사람을 찾는지 반을 한번 빙 둘러보다가 나에게 멈췄다. 그리고 내이름을 부르며 졸업장을 휘적였다. 너 정국이랑 좀 붙어다니는 사이였지? 네가 가져다줘라.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교탁으로 걸어가 걔의 것을 받아 자리로 돌아왔다. 담임이 남은 말들을 하는 동안 나는 남의 졸업장을 열어봤다. 내 것과 다르지않게 내용도 똑같지만 받는이의 이름만이 달랐다. 전정국. 나는 그 이름을 손가락으로 한번 문질거리다 덮었다. 살짝 까실한 졸업장 커버의 표면엔 먼지가 잔뜩 붙었다.

 졸업식이면 대부분이 그렇듯 찾아온 가족과 점심을 먹고 다시 집에 돌가는 길까지 내내 손에 전정국의 졸업장을 쥐고있었다. 이 모습을 본 엄마는 뭐길래 그렇게 손에서 놓질 못하냐고 물었지만 나는 별 대답하지 않고 걸음을 빨리했다. 삼년 내내 질리게 다닌 골목길 앞에서 가족에게 들릴 곳이 있다며 손짓하고 몸을 틀어 전정국의 집으로 향했다. 맨날 보던 일수 전단지, 비오는 날이면 물이 한가득 고이던 패인 시멘트 길바닥, 몰래 산 담배를 나누어 피던 가로등 ... 우리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흔적들을 지나오며 얘와 더 친구사이를 이어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무렵 전정국네 집 철문 앞에 다다랐다. 나는 갑자기 이 문을 두드리는 것이 두려워졌다. 싸운 사이도 아니었는데 지난 일주일간 보지 못했다고 이렇게 낯설을 일인가 싶었다.

 어쨌든 전해주긴 해야했다. 남의 것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도 불편했고 지난 일주일간의 소식이 궁금했다. 웬만한 일이 없는 이상 우리는 거의 매일 붙어다녔으므로 이렇게 연락없이 떨어진건 전에없던 일이었기때문이다. 결국 용기를 내어 대문을 주먹으로 퉁퉁 때렸지만 안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다. 사람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아무도 나오지 않기에 나는 조심스레 슬쩍 문을 밀었다. 문은 두드린 것이 허무할 만큼 쉽게 밀렸다. 익숙하게 문턱을 넘고 전정국의방문 앞에 다가섰다. 이번에도 노크를 할까 싶었지만 소용없을 것 같기도 했고 크게 우리 사이에 숨길만한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때문이었는지 나는 방문을 그냥 젖혀열었다. 방 안에 있던건 나가기 싫어 방에서 뒹굴거리는 모습이 아니라 술에 취했는지 헤실거리는 전정국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걔의 형, 그니까 지민이형이 있었다.

 둘의 사이는 매우 가까웠고 얼굴과 얼굴 사이도 밭았으며 나는 매우 천천히 그 둘의 모습을 인식하면서 마지막엔 둘이 입술을 맞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꽤나 복잡하게 얽힌 듯 서로를 삼키는 모양의 입과 틀어진 각도는 그것이 키스임을 말해주었다. 간단한 입맞춤이 아니었다. 내가 열은 문이 반대쪽에 닿아 큰소리를 낸 후에야 둘은 떨어졌다. 전정국은 처음보는 모습으로 나를 돌아봤다. 어, 너. 어눌한 발음으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는 얼굴이 낯설어 고개를 돌린 곳엔 형이 있었다.
 전정국보다는 멀쩡한듯 빨개지지도 않은, 평소와 같은 얼굴의 형은 무섭게 굳어있었다. 가끔가다 웃지 않는 얼굴을 봤을 때 무섭다고 느껴졌던 그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만 굴려 나를 찬찬히 훑어보다 손에 들고있는 졸업장을 봤는지 입모양으로만 작게 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좁은 방이라 몇걸음 되지 않는 그 길이를 걸어와 내 손에서 졸업장을 뺏어가듯 가져가며 형은 나에게 더없이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졸업했구나.


"네 쟤도 졸업이에요"

 내 말에 형이 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 맞다, 그렇지. 나는 자꾸만 손에 땀이 배여서 바지에 문질러 닦아야했다. 내가 그러건 말건 형은 말을 이었다.

"가져다 주려고 여기까지 온거야?"
"문이 열려있길래 그냥 들어왔어요 죄송해요"
"죄송한 일을 왜 해"

 순간 착 가라앉은 목소리와 사나운 말투에 일부러 눈을 피해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분명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남아있는데 말투는, 그 말은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바보같이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게요, 제,제가 왜 그런일을 했을까요... 형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다 당황스러움에 다시 눈을 돌리느라 시선이 여기저기로 방황했다. 어쩔줄몰라하는 내 모습이 티가 났는지 형은 건네받은 졸업장을 뒤로 아무렇게나 던져놓고는 내 머리를 한번 손으로 헝클었다. 이전에 마주치면 가끔씩 가볍게 장난으로 머리를 흐트려놓던 그것과 같았다. 나는 바보같이 거기에 안심했다.

"여튼 고맙고"
"..."
"이제 가. 가족들이랑 시간 보내야지"
"네..."

 내 대답을 마지막으로 불투명한 미닫이 문은 세게 닫혔고 나는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서있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전정국의 집에서 나오며 나는 방금 전까지 추억을 떠올리며 쉽게 넘던 문턱을 두번다시 밟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밟을 수 없을 것이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서 다시 그대로 가로등과 웅덩이, 전단지를 마주쳤다. 어쩌면 그동안 알고 지냈던 시간동안 친밀감을 느낀건 나 혼자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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