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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efii 2016. 11. 1. 11:45

 여름방학 때마다 정국은 걔네 아줌마가 하는 슈퍼에서 털털거리는 소리를 내는 선풍기 하나를 두고 계산이나 했다. 좁아터진가게라서 에어컨은 못두고 예전 상호 바뀐 회사의 고물 선풍기하나만 켜두고 땀을 삐질 흘리며 고개를 들고 맞은편의 티비나 쳐다보면서.
 지민은 그런 정국의 옆집으로 정확히 말하면 이젠 이사를 가서 걸어서 십오분 정도로 멀어진 거리에 산다. 그런데도 학교돌아오는 길에 꼭 심부름을 시키면 집 앞의 마트에 가지 않고 정국의 가게에 가서 사서 시원해야 할 것들도 죄다 미지근하게 덥혀온다.

 방학이니 지민은 이제 학교에 갈 일도 없고 본인도 더운건 어쩔 수 없는지라 심부름은 집 앞 마트에 간다. 에어컨도 나오고 대체 어디서 믹스해온건지 모를 요상한 댄스곡들이 흘러나오는 마트에서 아이스크림도 사고 과자부러기들도 사고 그러다 문득 생각난다.
 심부름으로 산 반찬거리들을 집 냉장고 속에 아무렇게나 넣어두고 천원 몇장을 주머니에 구겨넣으며 정국의 가게로 걸어간다. 슬리퍼를 직직 끈다. 사실 뛰고 싶지만 뜨거운 태양이 발작같은 생각들을 죄다 말려버렸다 손부채질을 하며 비척비척 걸어가서 괜히 정국의 이름을 부른다.

"정국이 뭐하냐"
"어 형 오랜만이요"

 티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대답한다. 어쩌면 아줌마가 있었을 수도 있는데 지민은 그냥 당연히 정국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건 틀리지 않는다. 여튼 지민은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게 조금은 섭섭해서 괜히 한번 더 부른다.

"야 전정국 너는 형이 왔는데"
"아 지금 바빠요 결승 봐야함"

 티비에선 분간도 안가는 몹들이 열심히 움직이고 정국은 자신도 모르게 입까지 벌리고 본다. 지민은 그런 순진한 얼굴을 본다. 그러다 후 괜히 숨을 내쉬고 짐짓 진지하게 말한다. 정국아 담배좀.
 그제야 고개가 돌아온다. 놀라지도 않고 이게 뭐하자는건가 싶은 표정으로 오히려 지민을 당황하게 하면서, 지민은 왜이렇게덥지 하고 이마의 땀을 닦고 조금 흔들리는 눈을 다시 부릅 뜬 다음 말한다. 담배, 줘. 정국은 그냥 지민을 쳐다본다. 아주 한심하게.

"형네 아줌마한테 이르기전에 가요"
"돈 있다니까"
"아 귀찮게 해 진짜"

 정국은 담배라면 질색하는 지민을 잘 알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우기는게 이해도 안되고 거기다 착한 표정으로 계속 담배를 달라고 하는데 저게 얼마나 웃기고 어색한지는 지민만 모르고있다. 이런데에는 또 고집이 센 지민은 정국의 앞에 서있고 정국은 그런 지민을 째려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에 있는 아이스크림 통에서 아무거나 두개 집어왔다. 그러곤 내민다. 이거나 먹어요. 얼떨결에 아이스크림을 받아든 지민니 멍청하게 정국을 쳐다봤다.

"이거먹고 정신차리고가요"

 정국은 계속 바보같이 서있는 지민을 향해 손을 휘휘 내저으며 티비 가리지 마요 하고 다시 티비만 쳐다본다. 지민은 아씨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고맙다 하며 가게를 나와 집으로 돌아간다. 지민은 초저녁인데도 가로등이 켜진 골목을 걸어간다. 정국은 자기가 앉은 자리에서 지민의 뒷모습이 다 사라질 때 까지 티비를 보는 척 하며 힐끔 보다가 지민이 완전히 보이지 않은 후에야 티비를 끄고 한숨을 쉰다. 저 모지리 피지도 않는 담배 달라고 하면 내가 관심 가져준대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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