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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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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efii 2016. 10. 28. 16:56

 내가 박지민이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게된건 우연이었다.

 그때 그는 내 옆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여자친구와 있었고 나는 카페의 창문 하나 없는 구석에서 형에게 훈계질을 당하고 있었다. 별로 듣고싶지도 않았기에 대충 몇번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것들에 집중하다 그 커플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는데 마냥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헤어지려는 것 같았다. 그의 여자친구는 아이스 커피에 꽂힌 빨대를 몇번 만지작대다가 잡아서는 잔을 휘휘 젓고 못참겠다는듯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감상이 담긴 설명이다- 말을 꺼냈다. 둘의 대화가 조금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귀에까지 들릴 수 있었던건 그날 따라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곡들이 잔잔했고 여자의 목소리가 보통 사람에 비해 조금 큰 편이기 때문이다.

"지민아 넌 진짜 좋은 사람이야"

 그는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뭐 그런 말을 해, 입모양으로 작게 중얼거리며 턱을 괴고 애인을 쳐다보는 박지민에 비해 먼저 평소에도 하기 힘든 말을 하는 여자친구의 표정은 애매했다. 그런 얼굴로 뒤이어 하는 말이 의외의 것이었다. 너무 좋아서 탈이지.

"너랑 나쁘게 헤어지고 싶은 마음은 없어"
"응?"
"다시 친구로 지내거나 했으면 좋겠는데 그건 어려울 것 같고…"
"…"
"그동안 사귄것도 아닌 것 같지만 … 여기까지 하는게 좋을 것 같아"

 말을 마친 그의 여자친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가고 나는 그 후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하여 한참을 쳐다봤지만 결과는 시시했다. 박지민은 잠깐 얼떨떨한듯 그대로 멈추어 앞만 보다가 정신이 돌아왔는지 컵에 담긴 음료를 한 번에 다 들이킨 뒤 자세를 고쳐 앉았다. 별로 충격적이진 않아보였다.

 어쩌다 얻어걸린 이별 이벤트가 끝나고 카페에 다른 일은 없나 하며 두리번거리던 중 앞에 앉았던 형이 나를 불렀다. 정국아.

"네"
"내가 한 얘기 하나도 안들었지?"
"아뇨…듣긴 들었어요"
"내가 무슨 말 했는지 알아?"

 뭔 소리를 했더라. 형은 속이 좁은 인간이었기때문에 나는 기억을 쥐어 짜내어 귓등으로 흘린 말들을 주우려고 노력했다. 세상이 어떻고 사람들이 어떻고 뭐라고 한참 말은 많이 한 것 같은데 귀에 꽂히는 한마디가 없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냥 입을 다물어야 했다.
 일자로 잠겨진 내 입매를 봤는지 형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잔에 담긴 빨대를 빼내어 테이블 위의 휴지에 올려놓더니 얼음까지 모조리 삼켜버렸다. 이 과정에서 나는 약간의 기시감을 느꼈는데 그 이유는 이어지는 형의 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세상을 넓게 봐야 한다고 했잖아"
"아 그랬구나"
"넌 더 그래야 돼"
"제가요?"
"넌 너무 한 사람만 봐"
"…"
"다른 사람도 좀 만나고 그래"

 결국 이 말을 하려고 여태. 내가 삼십분간 이루어진 형의 독백에서 결코 핵심을 찾아낼 수 없었던 이유는 그게 다 밑밥이었기 때문이고 커피를 마시는 행동이 익숙했던 이유는 아까 본 박지민의 여자친구의 행동과 비슷했기때문이었다. 이게 무슨 운명인지 조금 전 까지 남의 이별 과정을 지켜본 내가 지금은 당장 눈앞에서 헤어지자는 소리를 듣고 있다.
 나는 눈만 가만히 깜빡였다. 그렇게 내가 집착하는 성격이었나 돌이켜보는데 오히려 무관심일 정도로 나는 연애하는 사람의 자세를 보여준 적이 없었다. 가끔 일주일 씩 연락하지 않으면 먼저 섭섭하다고 문자 보낸게 누군데, 순간적으로 열이 치받아 다녹아 맹탕이 된 커피를 마셨다. 맛이 없다.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뭐예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만나라는거지"
"헤어지자는거죠"
"꼭 그렇게 말해야겠다면 그렇지…"

 오히려 정확히 확인 사살하니 마음은 편했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눈물이 나진 않고 그냥 잠시 멍해졌다. 꿈쩍도 안하는 내가 걱정스러웠는지 형은 괜찮냐고 물어봤고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말로 괜찮다고 하고싶진 않았다.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었는지 테이블 위에 올라온 내 손등을 두어번 도닥이던 형이 먼저 일어났다. 한참 내 머리꼭지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더니 그가 마주친 눈에 멋쩍게 웃었다. 미안해. 먼저 가볼게. 이러고 한번에 나가면 좋으련만 형은 가다가 멈추고 지극정성으로 나를 향해 돌아본 다음 말을 덧붙였다.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거야"

 안하느니만 못한 말을 하고 사라진 형의 자리를 쳐다보다 나는 괜히 눈을 돌려 주위를 살펴봤다. 한참 수업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는 카페는 조용했다. 순간 이 쪽팔리고 하나도 안멋진 과정을 본 사람이 있을까싶어 빠르게 카페를 훑다가 박지민의 옆모습을 봤다. 그는 여전히 자리에 남아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휴대폰을 두들기는 모습을 보며 '왜 아직도 안갔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지'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제야 괜찮지 않아서 엎어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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