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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efii 2016. 10. 14. 01:25

 포장마차에 도착했을 때 이미 형은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고 잠들어있었다. 나는 형이 왜이렇게 약해졌나 생각해 본다. 꼭 예전에 비해 크게 성격이 죽은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안하던 짓을 했다. 항상 데리러 오던 사람이 반대로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하거나 되지도않는 심술을 부려 집에 일찍좀 다니라는 잔소리까지 하면서 나를 과보호하기도 했다. 아프면 마음도 병든다던데, 이렇게까지 신경이 예민해진걸 보면 몸이 더 안좋아진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이렇게 성격까지 변할만큼 아픈 사람이 술을 퍼마시고 뻗어있으니, 순간 머리가 지끈거려 잠깐 뒷목을 주무르다 일단 집에부터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엎어진 형을 업으려다 계산이 먼저인 것 같아 주머니를 뒤지고 있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역시나 싶은 얼굴이 있다.
 그는 형의 애인으로…… 나는 둘의 연애가 어떤지는 잘 몰랐지만 그가 좋은 사람이 아님을 직감했다. 나는 그 사람의 쎄한 눈이 싫었다. 웃으면 따뜻하다가도 빤히 무언가를 바라볼 때 미끄러질듯 매끈하게 올라가는 눈매가 재수없었다. 사람을 핥아내리는 것만 같아서. 문제는 그 눈으로 나를 본다는 것에 있지만. 그래서 나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고, 특별하게 해를 입히진 않았지만 싫었다. 느낌만으로 사람을 싫어하는건 좋지 못한 것임을 알지만 나는 자꾸 그를 경계하게 된다. 마주칠 때면 그에게 휘말리는 순간 위험해질 것이라고 온 몸이 말했다.
 친한척 다가오는 그의 위장된 낯을 보며 잠깐 불쾌한 감상을 하다 문득 그가 왜 여기에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형의 옷주머니를 뒤져 전화기록을 보니 나와 그의 이름이 연달아 찍혀있다. 나도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형이 실수로 저한테도 걸었나봐요. 제가 데리고 갈게요. 들어가세요. 가만히 서있는 그에게 쏘아대듯 말을 하고 다시 지갑을 열을는데 그가 내 행동을 막았다. 이미 계산은 내가 했어. 그런데 너 혼자 갈 수 있겠어? 태워다줄게. 방금 전의 철벽같은 거절멘트에 복수라도 하는 듯 그가 공격해온다. 그의 말을 호의가 아니라 공격이라고 표현한 것은 나의 의사가 어찌되던 자신이 하고싶은대로 하겠다는 태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꺼낸 지갑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어떤 말을 할까 생각한다. 최대한 그가 형과 나의 관계를 의식하고 기분나빠할만한 말이 뭐가 있을까.

"걱정해주시는건 좋은데요 아예 이런 일이 안일어나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
"…"
"가뜩이나 아픈 형 좀 힘들게 하지 마요"

 말을 마치고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형의 한쪽 팔을 어깨에 둘러맨다. 부축할까 하다 그냥 업는게 나을 것 같아 다시 내려놓고, 나는 지민에게 눈짓으로 말했다. 좀 도와줘요. 그는 팽팽히 당겨진, 가끔가다 형과 같이 있는 모습을 봤을 땐 볼 수 없던 눈꼬리로, 대답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굳은 얼굴을 하다 이내 표정을 풀고 내가 형을 업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자세를 고쳐잡고 나는 고개를 꾸벅였다. 이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포장마차를 나가려는데 그가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정국아 뭐 힘든일 있으면 연락해, 혼자 어려워하지말고"

 나는 그가 언제까지 참을 수 있나 궁금해서 찔러보기로 한다.

"형이 자꾸 저한테 이러지만 않으면 괜찮아요"
"…"
"들어가세요 오늘 일은 제가 대신 사과 드릴게요"

 내 대답을 들은 그의 표정을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집을 향해 걸었다. 두세발자국쯤 걸어갔을 땐 정말로 뒤돌아보고싶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아마 내가 뒤돌아보는 것을 못알아볼만큼 시야에서 멀어졌을 때 그땐 그 얼굴이 깨졌을까. 도발은 했지만 확인하지 못한 것이 아쉽긴 했다.


 매일같이 발전없는 당장으로부터 도피를 바라다가도 숨을 헐떡거리며 쉬는 형을 보면 그럴수도 없었다. 키워준 값이라는게 뭘까. 나는 크게 의존하며 자라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내가 모르는 방패는 항상 있었을 것이라 생각해주기로 한다. 고마움을 느끼고 미안함이 마음속에 늘 자리잡고 있었지만 거기서 애틋함같이 끈적이는 감정은 고이지 않았다. 기껏 키웠는데 영 잘못키운 것 같아 자조적인 웃음이 나온다.
 지독히도 싫은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느냐고, 물론 가능하겠지만 지금의 경우는 아니었다 이 감정이 질투와 동경임을 잘 알고있다. 나는 지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셋의 관계 중에서 목줄을 잡고 마음껏 당길 수 있는 그 권력을 사랑했다. 나도 똑같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손 안에서 의미없이 구르던 휴대폰이 멈춘다. 나는 통화버튼을 눌러 뻔한 통화기록들 사이에서 낯익으면서도 위화감느껴지는 번호를 찾았다. 누를까, 말까, 손가락은 이미 화면위를 가볍게 닿았다 떨어졌다.

 지민과 나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큰 길에서 만났다.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는동안 다리를 떨면서, 어쩌다 일이 이렇게 꼬였을까 싶은 내 기구함에 남의 일인 것 처럼 동정을 던진다. 나는 이렇게 당장 겪을 일과 심지어 그것이 내가 당할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갑자기 멀게 느껴지곤 했다. 상처와 피해 모두 내 몸과 기억에 남을 사실인데 그게 곧 닥칠 것을 자꾸 잊어버린다. 나는 이 의도적인 건망증이 아마 모든 것을 싫어하기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점점 좁아지는 인간관계와 줄어드는 여유, 돈,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찾은 방법을 위해 최소한의 양심마저 주저없이 팔아버리는 자신.
 버스정류장에 멈추는 버스도 점점 줄어드는 시간이었다. 열두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약속시간이 언제였더라, 잊어버린 채 제멋대로 나온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택시들을 바라보다 보도블럭의 튀어나온 부분을 발끝으로 의미없이 차는 중에 비싸보이는 차가 제 앞에 멈춰선다. 버스정류장의 불빛이 그의 눈매처럼 매끈한 차의 바디 위로 늘어졌다. 지민은 내려서 주머니의 손을 넣고 살짝 웅크린 자세의 나를 보더니 미안한 표정을 했다. 딱히 미안해 할 이유는 없는데.

"많이 기다렸어?"
"아뇨"
"춥지, 바람이 차더라"
"그냥… 괜찮아요"

 친절이 마냥 고와보이지 않아서 어차피 친한 사이도 아니였으니 적당히 말투를 꾸민다. 하지만 이미 형 몰래 연락한 것 부터 착한 아이는 물건너갔을테니 그냥 적대심을 한껏 드러내볼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고싶은 말은 좀 있었지만 하지 않기로 하고 나는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그는 열어주려는듯 손을 뻗다 내가 여는 것을 보더니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시트는 푹신했다. 이대로 잠들어도 나쁠 것 같진 않다.
 행선지도 모르는 채로 나는 지민의 차에 올라 타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이 밤이 어떻게 흘러갈지 상상해봤다. 그의 집으로 가게될지 모텔로 가게 될지, 어쨌든 우리가 섹스를 하기위해 만난 것임은 확실하므로. 오늘 밤은 비밀로 형의 애인에게 몸을 파는 나와 이를 거절하지 않은 형의 애인과의 합작이었다. 내가 이런 쓸모없는 생각을 하는동안 의외로 그는 나에게 이것저것 묻지 않았다. 나에 대한 어떤 것도 묻지 않았고 당연히 집에 있을 형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 이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추울까 싶어 그가 틀어놓은 히터가 돌아가는 소리만 차있던 공간에 벨소리가 울리고 손에서 빛까지 뿜으며 울어대는 탓에 적막을 깬 범인이 나임을 알았다. 나는 발신자를 확인했다. 형이었다. 나는 화면 속 나란히 놓인 녹색과 빨간색의 두 버튼을 쳐다본다. 마치 아까 지민에게 전화를 걸까 고민하던 순간처럼 답은 이미 나와있지만 일부러 고민하는 척 한다. 형은 생각보다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전화벨은 멎지않는다. 차에 탄 이후로 한마디도 하지 않은 탓에 조용했던 차 안이 시끄러웠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휴대폰조차 바라보지 않던 눈 앞으로 녹색 버튼을 누르는 손이 보인다. 지겹도록 반복되던 멜로디가 끊기고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꽤 화가났는지 같이 살면서도 몇번 들어보지 못했던 말투와 목소리다. 뭐라 말할지 변명도 생각하지 못한 상태라 당황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지민은 나와 눈을 마주치고 또 즐거운듯 웃기만한다. 욕이 목까지 차오르는 중에 형이 답을 재촉했다.

[너 어디야]
"…약좀 사러요"
[그게 그렇게 오래걸려? 시간이 몇신데]
"근처에서는 안팔아서요"

 그가 금방 들킬 거짓말로 둘러대는 나를 본다. 수화기 너머에선 한참 대답이 없다가 기침소리와 한숨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그리고 잔뜩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하길, 날 추우니까 빨리 들어와. 하면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말을 한다. 알았으니 먼저 자라고 대답하며 이 순간을 넘기려던 순간 형이 한마디를 더 얹는다.

[…연기 좀 먹어도 안죽으니까]

 아. 나는 그 말에 작게 탄식한다. 형이 눈치챈 것은 그와 나의 상태가 아니라 미처 숨기지 못한 교복 마이 주머니 속의 담배와 몇번 귀찮아 충분히 없애지 않았던 담배냄새였다. 일찍 갈게요. 대답하고 종료버튼을 누르고 옆에 앉아 운전하는 지민을 훔쳐보다 눈이 마주친다. 그는 여전히 웃고있었고… 나는 정말로 욕하고싶었다. 전화가 끊기고 형은 아마 전화를 받는 동안 하지 못한 기침을 크게 할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을 아니까 참았던 것들을 모조리 토해내고 뱉어내고 피맛이 감도는 입안을 수돗물로 헹구어내겠지. 하지만 형은 내가 아닌 자신을 더 걱정해야한다는 것은 모르고있었다.
 지금 내가 뭘 하고있는건지,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정말 이것뿐이었는가싶어 억울해진다. 끙끙대며 찢어진 폐부를 잡고 닳은 이불을 덮은 채 잠을 청하는 형과 움직이는 줄도 모를만큼 조용히 굴러가는 고급스러운 차에 앉아있는 나, 가을 밤은 싸늘했고 서로의 공간은 온도가 달랐다. 각자 아무리 이불을 깔아도 올라오는 냉기에 추워하고 땀이 날 만큼 건조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더워하며 어쩌면 오늘 이 과한 온풍기의 바람은 형의 것이었을지도 모르는 밤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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