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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지정1

Kyefii 2016. 11. 16. 16:50

 불쌍한 세대였다. 숨 터트려올 날만 기다리다 겨우 뱃속에서 빠져나와 붙어있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을 때 본 것들은 모두 메마른 것들 뿐이었다. 공기 중에 섞인 모래들과 바닥에 깔린 굵은 돌들, 그리고 풀 한 포기 붙어있지 않은 딱딱하고 바스러질 것 같은 절벽이 그랬다. 지민은 태어나서 세상을 많이 보고 자랄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그가 자라온 환경에서 본 것들은 하나같이 축축함이라곤 전혀 없었다. 발 끝에 채이는 흙을 한 줌 쥐어보다 움켜쥔 손을 풀어헤치자 금세 바람에 쓸려 날아간다. 조회시간은 지루했다.


 세상이 망한지 몇세기가 지났다고 했다. 지민은 태어난 순간부터 ‘타운’의 아이였고 지민의 부모도 지구가 망한 이후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민이 아는 세상은 듣는 것도 보는 것도 모두 똑같은 황량한 화면이 전부였다.

 지민의 하루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참담 그 자체로, 온통 바깥은 사막화되어버렸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된 괴물들이 생물체들이 돌아다녔다. 그래서 현재 지민이 살고 있는 ‘타운’은 사람들은 세상이 망하기전에 한 부자가 쌓아올린 벽으로 둘러쌓인 고립된 공간이며 당연한 수순으로 엄청난 신격화와 독재의 분위기가 퍼졌다. 부자는 이 안에서 왕 그 이상이었다. 죽을뻔한 사람들을 거두어 주었으니 추종자도 많고 그곳을 벗어나면 살 수 없으므로 쫓겨나고 싶지 않은 모두는 그에게 복종하였다.

 그는 괴팍한 취향과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어린 소년들을 모아서 호위랍시고 기르는 것이었다. 그는 영민한 아이들을 귀신같이 알아보고는 수집했다. 지민도 예외는 아니었다. 열 다섯이 되던 해에 바로 불려가 수업을 받았다. 지민은 소년들 사이에서도 탑이었다. 뭐든 배우는 속도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월등히 빨랐다. 다만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다른 쪽으로 머리를 굴릴 여유가 생긴다는 뜻이고 이건 곧 의심과 불만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같다.
지민은 하루하루 살면서 딱 한번 본 이 타운의 ‘주인’에게 복종해야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 아량으로 이 곳에 살게 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숭배받을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민이 반항심을 키워가던 때 드디어 ‘주인’을 다시 만나게 되는 날이 왔다. 평소처럼 훈련을 받는 중에 큰 덩치의 사내가 지민을 찾아와 무언가를 일러주고는 돌아갔다. 밤에 몸을 정갈히 하여 성채로 오라는 것이었다. 지민은 그가 무엇을 하려기에 자신을 부르는지 예상할 수 없었다. 끽해야 혹시 내 능력이 너무 뛰어나 상을 주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뻔뻔한 생각이 다였다.
 그러나 지민이 찾아갔을 때 그를 맞이한건 상도 아니고 진지한 '주인'의 모습도 아니었다. 그저 소년의 몸을 좋아하는 변태가 있을 뿐이었다. 지민은 사뭇 다정하게 자신을 부르는 그에게 이상함을 느꼈지만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지민의 옆구리를 쓸어내리고 엉덩이를 만지작거리며 몸을 가까이 하는 순간 지민은 그의 귀을 깨물고 도망쳤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붙잡힌 지민은 그 후 죽기 직전까지 맞고 며칠을 독방에서 지내야했다.


 이후 지민은 소년들 사이에서는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정 할 말이 떨어지면 회자되는 소문의, 정국은 그런 이야기를 통해 지민을 처음 알게 되었다.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드럼통의 불길을 쳐다보며 정국은 아이들의 얘기에 찬물을 붓곤 했다. 그래서 지금은 뭐한대? 모르지, 어디서 우리 같이 살고 있겠지. 의미없는 소문의 결말에 정국은 그 말에 픽하고 웃었다.

"그렇게 반항해서 좀 더 높은 자리 올라갔대?"
"그런얘긴 없던데"
"다 튀어 봤자 소용없는거야... "

 정국은 불길을 뒤적이던 나뭇가지를 던져버리곤 먼저 들어간다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곳에 모인 아이들이 저런 이야기를 할 때의 심리는 대개 무기력한 상태였다. 몇주씩 진행되는 야외훈련에 아이들은 의지없이 입으로만 반항을 얘기할 뿐이다. 정국 역시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도 똑같이 어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으며 모든걸 때려치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원하지 않더라도 마음을 죽인 채 버텨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순응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순응하다보니 이제는 공식으로 자리잡은 '주인'의 밤시중 차례가 정국에게 돌아왔다. 지민이 거하게 깽판을 친 이후에 몇몇의 아이들이 은밀하게 이루어지던 '주인'의 호출에 반항했지만 모두 깨끗하게 진압당했다. 대신 덕분에 그나마 설탕이라도 발린 조건들이 붙어 정식으로 그에게 소집당한 소년이라면 모두 한번쯤은 거쳐가야 하는 과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정국은 이번이 자신의 차례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몹시 두려웠지만 한번이면 끝난다는 말과 함께 그래도 그렇게 무섭지는 않더라는 말을 애써 상기시키며 괜찮다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래야 버틸 수 있었으니.

 전달받은 대로 정국은 깨끗히 씻고 위에서 보내온 옷을 입었다. 작은 종이에 적힌 내부 지도를 살펴보며 올라가는 동안 성채는 온통 캄캄해서 '주인'은 왜이렇게 어두운 것을 좋아하는가 생각했다. 걷고 걷다 설명 상 여기라고 표시된 곳에서 멈춘 정국이 제 앞에 놓여진 제 키보다 두배는 더 큰 돌로 이루어진 문을 올려다봤다. 전달받은 주의 사항에 특별한 부름이 없기 전 까지는 먼저 노크하지 말 것이라고 쓰여져 있었기에 정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문 앞을 서성이다 결국 그 옆 건물의 벽에 기대 쪼그려 앉았다.

 부름을 기다리는 동안 정국은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발치에 기어가는 벌레를 볼 뿐이었다. 아주 작아서 어떻게 발견했는지도 용할만한정도로 작은 벌레는 정국의 머리 위로 작게 난 창문에서 내려오는 달빛 덕에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제 흔적을 남기는 중이었다. 그 때였다. 제 앞으로 작은 인영 하나가 날쌔게 다가와서는 정국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최대한 몸을 숨기려는 듯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지 않는 낯선 사람의 얼굴의 반쪽으로 그나마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장난스럽지만 진지한 표정을 한, 저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소년이었다.

"너 여기서 나가지 않을래?"

 그의 말에 정국은 가만히 눈만 깜빡였다. 알 수 없는 사람이 자신에게 도망을 권유하고 있다.

"나가지 않겠냐고"
"모르겠어요"
"모른다고?"

 정국은 자신 앞에서 다급하게 물어보는 그에게 느릿하게 대답했다. 사실 도망친다고 해서 좋을 것도 모르겠고 앞으로 저 방 안에서 일어날 일이 얼마나 끔찍한줄도 몰랐기때문에 정국은 셈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몰라서 모르겠다고 하는 말이었는데 소년은 답답하다는듯 짜증을 냈다. 야, 너 저 안에 들어가서 막 괴롭힘 당해도 괜찮아? 아니, 일단 뭘 당하는지 알기나 해? 역겨운 것을 입에 담고있었던 사람처럼 혀를 내밀고 인상을 쓰는 그에게 정국이 물었다.

"많이 아파요?"
"..."
"애들이 별로라고는 하던데"
"너 진짜 바보야?"

 남자는 덥수룩한 제 앞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마구 흐트렸다. 아 똑똑한줄 알았는데 완전 멍청이네. 작게 중얼거리고 결심한듯 정국의 손을 잡은 그가 정국을 제 쪽으로 당기며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기울어지는 몸에 본능적으로 정국은 발을 굴리며 남자의 속도에 맞추어 뛰었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달리는 것이 적어도 다치지는 않을 방법이라고 생각했기때문이다.

 둘은 이리저리 꼬인 건물의 복도를 달렸다. 남자는, 그러니까 이쯤에서 밝히자면 정국은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지민은 영리한 아이라 몇번 드나들었던 성채 최상층의 구조를 모두 꿰고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제가 틈틈히 노려둔 뒷문이 나올 것이다. 지민이 달리다 급히 멈춰 엉성하게 막아둔 나무 판을 발견하고 그것을 들췄다. 정국은 남자가 하는 행동을 지켜볼 뿐이었다. 지민이 나무 판을 드러낸 곳엔 작은 틈이 있었다. 지민은 정국에게 손짓했다. 어서 여기로 들어가. 일단 그가 시키는대로 정국은 그 개구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잘 먹지 못해 마른 몸은 수월하게 구멍을 통과했다. 다음은 지민이었다. 여러번 드나들어봤다는 듯 자연스럽게 틈을 통과했을 때 지민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것은 달빛이 아니라 캄캄한 그림자였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제 앞을 가로막은 장애물의 정체는 경비대장이었다. 지민은 제 앞에 서있는 남자를 보고 작게 인상을 썼다.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아씨..."
"지민,"

 그를 부르는 말에 정국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 지민을 쳐다봤다. 자신을 데리고 냅다 뛰던 사람이 낮의 그 소문의 주인공이었다니, 정국은 생각보다 빠르게 반항의 아이콘이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여전히 도망을 원하는 사람이었다.

"..."
"넌 영원히 추방이야. 알겠어?"

 그는 지민의 뒷덜미를 잡고 억센 손길로 그를 끌고갔다. 발버둥치는 지민에 결국 남자가 손에 쥐고있던 몽둥이로 그의 등을 내리쳤다. 지민의 들썩임이 멎었다. 정국은 지민처럼 잡혀가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 차림새가 '주인'의 방으로 들어가는 밤 시중의 차림이었기때문이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가 정국에게 손짓했다. 모른 체 할테니 다시 방 앞에서 기다려라. 정국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이켰다. 뒤돌아서 다시 그 구멍을 통해 성채로 들어가려다 멈칫, 지민이 끌려가던 모습이 떠올라 얼굴을 돌렸다. 이미 사라져버린 뒤 모래바람만 남은 빈 터를 보며 뭔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나보고 멍청이라고?"

 틈을 모두 통과한 정국이 제 옷에 못은 먼지를 털며 천천히 돌아가는 동안 무언가 그의 안에서 톡 하고 튀어나왔다. 시키는대로, 누구에게 칭찬도 욕도 들어본적 없이 모든 것에 감흥없는 몇 안되는 햇수를 살아왔던 정국의 속에 불만이 자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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