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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지정

Kyefii 2016. 10. 8. 01:23

 지민은 다리를 꼬고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었다. 낡은 창고주제에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작은 탁자, 세개의 소파,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위태롭게 공간을 밝히는 조명. 있을만한 것은 다 있는 공간에 있어야 하는사람도 모두 모였다. 지민, 거래를 위해 찾아온 손님, 그리고 정국. 실제로 거래를 하는 것은 정국과 손님이고 지민은 브로커로, 깔끔한 거래를 위한 증인으로서 자리에 참여했다.
 정국을 소개하자면 이 구역 내에서는 약을 직접 만들고 파는 유일한 조직의 리더였다. 조직이라고 해봐야 약만 주면 뭐든 하는 미친놈들을 모아 꾸린 그룹이지만 중독된 사람들을 얕잡아볼 수는 없다. 정국을 만난 사람들의 대부분이 하는 첫마디는

"생각보다 어리구만?"

 오늘 만난 손님도 어김없이 그의 어린 외모를 비아냥거린다. 그도 그럴것이 손님은 이미 해먹을만큼 해먹고 나태해진 늙은 남자이기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누구나 먹는 나이에 연륜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을 하여 아래에 졸개 몇명을 부리는 남자는 젊고 깨끗한 눈의 정국이 아니꼬울것이다. 당연했다. 그러나 여튼 중요한 것은, 그는 지금 정국에게 약을 사러 온 상황이고 거래가 실패할 경우 불리한 것은 손님이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라도 더 굽신거려야 하는 상황에 손님은 제버릇 남 못주고 꼰대짓을 한다. 지민은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키득거렸다. 병신새끼

"살 마음이 없으신가봐요"
"돈 싫어하나? 사준다는데도 싫은가보군"
"팔고 안팔고는 제 마음이죠 예의 없는 사람은 질색이라서"

 정국이 대화의 진행을 위해 앞으로 기울였던 몸을 뒤로 제꼈다. 지민은 그런 정국을 보며 아 이번 거래도 쫑이겠군. 생각했다. 그는 저에게 과하게 비비적대는 파리들도, 얕보는 늙은 여우들도 모두 싫어하는 사람이라 지금 눈앞에서 거드름을피우는 손님은 당연히 싫은 사람으로 약을 팔지 않을 것이다.
 꼭 팔지 않을 것 처럼 말하는 정국의 태도에 당황해는지 손님이 지민을 쳐다보았다. 이봐 브로커면 이 상황좀 어떻게 중재해보라고. 글쎄요 저는 그렇게 만나고 싶어하던 사람을 만나게 해드린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지민이 휘파람까지 불며 웃어보였다. 손님의 이마에 핏줄이 선다.

"진짜 안팔거야? 이렇게 돈도 가져왔는데"

 남자가 모서리가 헤진 인조가죽의 수트케이스를 열어보였다. 돈이 차있긴 했다. 정국은 그것을 눈으로 대충 훑고 역시나 관심이 없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아까부터 기분을 잡쳤거든요, 오늘 일은 없던 것으로 하죠. 말을 마친 정국이 지민을 바라본다. 지민은 이 낡은 창고에 들어온 순간부터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그의 옆에 꽁초가 수북이 쌓이고 정국과 손님 사이의 대화가 어려울만큼 연기가 어질러지자 결국 못참고 말을 하기 위해 그를 쳐다본 것이다.

"담배좀 그만피면 안돼요?"
"왜요?"
"숨막혀요"
"난 이러려고 온건데"

 솔직히 나 여기서 할 일 없잖아요. 지민이 어깨를 으쓱하며 새롭게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 정국이 한숨을 쉰다. 둘의 대화를 가만 보고있던 손님이 다시한번 짜증을 냈다. 이번엔 협박을 담아 별로 무섭지도 않은 위협을 한다.

"변변찮은 애새끼들 몰고다니니까 어깨에 힘 좀 들어가나본데,"
"하나도 안무서워요"

"뭐?"
"그렇게 협박하셔도 안무섭고… 안팔거니까 오늘 거래는 없던걸로 하죠"

 그의 무례함에 결국 정국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지민을 쳐다보며, 사실 그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디서 이런 덜떨어진 새끼를 손님으로 물어와서는' 그러나 입은 최대한 생각을 자제하고 움직인다. 중개비는 저쪽에서 받으세요 난 오늘 여기 나온 것 만으로도 충분히 손해봤으니까. 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님을 쳐다본다. 눈을 곱게 접어 웃으며 손을 내민다. 분명 만나게만 해줘도 준다고 하셨죠? 그러나 그런 지민에게 돌아온 것은 열받아 구겨버린 지폐가 아닌 총구였다. 엥. 순식간에 표정이 일그러진다.

"너 이새끼 사람들이 찾아주니까 잘난줄알지?"

 어느새 지민에서 정국으로 돌아간 총은 손님의 손끝의 방아쇠와 함께 부들거린다 -참고로 자존심이 상했는지 목소리도 조금 떨리는 듯 했다- 정국은 손님과 떨리는 총을 차례대로 쳐다본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무섭지 않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웃기기까지 하다. 게으르게 남들이 꾸벅하는 고개에 자신을 위로하며 날쌔지도 않고 굼뜨고 배나온 남자가 뭐가 무섭겠는가, 총에 총알은 제대로 들어있을지 궁금할지경이었다. 정국은 그런 그가 좀 가여워서 겁먹은척 해줄까, 고민하다 양 손을 천천히 올렸다. 무서워요, 그러지 마세요. 뱉은 말엔 영혼이 없다.

 코미디가 따로 없네. 가만 상황을 지켜보던 지민이 몸을 접으며 웃자 남자가 열이 올랐는지 벌개진 얼굴로 지민을 향해 총을 겨눈다. 분명 열받게 한 원인은 정국인데 비웃는 지민도 용서할 수 없고, 문제는 멋들어진 쌍권총이 없으니 둘에게 동시에 조준할 수 없어 왔다갔다 팔을 움직인다. 너네 짜고 나한테 접근한거아냐?! 그의 말에 지민이 웃던 것을 멈췄다. 갑자기 뚝 그친 웃음에 당황한 것은 손님 뿐만아니라 정국도 마찬가지였다. 생글생글 잘만 웃던 얼굴은 어디가고 쎄한 눈매로 지민이 손님을 쳐다본다. 아 어떡하지? 정국을 향해 말을건다.

"뭘 어떡해요"
"너무 많이 알았는데"
"둘러대면 믿을걸요"
"그래도 귀찮은 일은 없으면 좋잖아?"

 지민이 말을 끝내고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손님에게 겨눈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그의 가슴을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발포소리가 나자마자 창고의 밖에서 몇명의 사내가 문을 따고 들어왔다. 그러나 그들 역시 지민과 추가로 정국의 총에 맞아 그자리에서 쓰러졌다. 은밀하게 하자며 부하는 최소로 데리고 오라고 한 덕에 처리할 시체가 적었다. 지민이 장난스럽게 총의 끝에 후- 바람을 분다. 정국이 짜증을 냈다. 그럴 시간에 이거 옮기는 것 좀 도우라고요. 지민이 그 말에 정국의 옆으로 다가가 사내들을 아직 따끈하게 피를 흘리는 손님의 시체 옆으로 끌고간다. 총 세 명의 시체가 성의없이 쌓였다.

"이거 이제 어떡하려고요"
"태워야지 뭐"

 지민이 창고의 구석으로 걸어가 플라스틱 통을 끌고와 뚜껑을 열고 그들, 아니 쓰레기 더미 위로 액체를 뿌린다. 냄새가 오싹한게 석유다. 이럴 줄 알고 있었어요? 너무 자연스러우니 의심이든다. 정국이 아까 지민이 통을 꺼내온 곳으로 걸어가 남아있던 통을 발견하고, 그것을 들고와 테이블과 소파 그리고 벽에 뿌리며 물었다.

"아니 그건 아니고"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웠는데"
"철저하면 좋잖아"

 어차피 가구들도 다 싸구려야 이거. 빈 통을 아무데나 던진 지민이 정국이 일을 다 마칠때까지 기다리고, 정국도 지민처럼 빈 통을 아무데나 던지는 것을 확인한 다음 그의 손을 잡고 창고 밖으로 나왔다. 공기가 상쾌하다. 지민이 정국을 밀어내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낸다. 불을 키고, 창고의 안쪽으로 깊게 던진다. 툭 떨어짐과 동시에 불길이 치솟는다. 지민은 재빠르게 문을 닫고 정국에게 뛰어간다. 그와 나란히 속도를 맞춰 걸어가다 악! 하고 소리를 지르면

"왜요?"
"안가지고 나왔어!"
"뭘요?"
"그인간이 가져온 돈가방"
"아 진짜..."

 정국은 지민을 한심스럽게 쳐다보고, 골목을 돌아 몇걸음 더 걸어가면 보이는 자동차의 문을 열어준다. 자연스럽게 올라탄 지민을 확인한 후 문을 닫아주고 그 다음에야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장소를 빠져나가며 중얼거리는 것이다. 이것도 보스라고... 지민은 창문을 내려 빠르게 지나가는 야경들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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