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On

지정

Kyefii 2016. 9. 25. 01:36

 가기 전 까지 몇번이고 당부를 했더랬다. 형은 너 평소에도 잘 하는거 알지만 그래도 귀찮다고 막 쇼파에서 자지 말고, 밥은 시켜먹을거면 꼭 밥으로 먹고. 나가기 바로 전 까지 현관 문 앞에서 캐리어를 손에 쥔 채로 잔소리를 하기에 대충 알았어요, 걱정도 많네. 하며 시원하게 대답은 했지만 사뭇 걱정된다는 얼굴로 지민이 나간 다음 정국은 바로 쇼파에 드러누워 지민 생각을 했다. 걱정은 정국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의미가 좀 다르지만 어쨌든 상대를 생각한다는 점에 있어선 같다. 정국도 나름대로 지민이 걱정되었다. 남이 듣는다면 우스울지 모르겠으나 출장 가서도 내내 저런 생각만 하면 어떡하지, 라는 오버스럽지만 충분히 가능한 걱정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뜬 생각을 하다 배가 우는 소리를 내기에 일단 휴대폰부터 집어들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며 시계초침소리가 울리는 빈 거실에서 느낀 혼자만의 시간은 생각보다 꽤 좋았다.


 지민이 출장으로 집을 비운지 3일 째 였고 생각보다 지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어려웠다. 매일 저녁 쯤에 지민이 전화를 하면 정국은 특별히 거짓말은 하지 않았으나 뭉그러진 대답을 했다. 꼭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마치 엄마한테 거짓말하는 애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썩 좋진 않았으나 굳이 사실대로 말하고 싶진 않았다. 지민이 정국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지민의 쓴소리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대부분의 대학생이 가족에게 온 전화를 받았을 때 괜찮다고 둘러대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말했을 뿐이다.

 여튼 하루 일과를 묻는 통화의 마지막엔 항상 어서 집 가고싶다, 보고싶어 정국이. 하고 정말로 그 마음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을 하면, 저도모르게 마음이 물러져서는 그럼 영상 통화라도 해요. 말하지만 그러다간 진짜로 다 때려치고 집으로 달려갈 것 같아 무섭다고 말하는 지민에 형은 진짜 그럴만도 하네. 대답하는 정국이었다. 그렇게 3일 내내 마주보고는 못할(물론 지민은 평소에도 저런 말들을 쉽게 했지만) 눈물겨운 대화를 끝으로 통화를 마무리 하곤 했다. 출장은 총 5일이었다.


 출장 5일 째, 어쩌다 맡은 일이 있어 의도치 않게 밤늦게 작업을 하던 정국이 결국 여름 감기에 걸렸다. 여느 때 처럼 지민의 책상에 앉아 작업을 마무리하고 침대에 엎어져 기절했는데 밤을 샐 생각으로 들어갔던 터라 그냥 맨 몸으로 잔 것이 문제였나보다. 지민이 출장을 가고 그 다음날에 받아 몇일을 모니터를 쳐다보며 일을 했으니 처음엔 단순히 수면부족인가 했는데 오히려 더한 것이었다. 개도 안걸린다는 여름감기라니 허탈하게 처방받은 약을 삼키고 쇼파에 늘어졌다 문득 시야에 들어오는 달력을 본 정국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큰일이네, 중얼거리며 다시 세어본 달력엔 낯익은 숫자 아래로 밑줄 두어개가 그어져있었다. 지민이 돌아오는 날, 오늘이었다.

 우선 지난 밤에 구겨앉아있던 지민의 방으로 뛰어가 책상을 살폈다. 에너지 드링크 캔 몇개가 굴러다니는 것을 얼른 주워다 버리며 약은 어쩌지 고민하다 대충 노트북 사이에 끼워 넣었다. 정리는 평소에도 안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환기나 좀 시킬 요량으로 창문을 열고 쇼파에 누워 늘어져있자 십분도 채 지나지 않아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환영이라도 해줄까 싶어 현관 앞에 서서는 들어오는 지민에게 정국이 웃어보이자 처음에는 놀라는듯 싶더니 이내 정국을 끌어안는 지민이었다. 말없이 안고 부둥대다 지민이 몸을 떼냈다. 킁. 정국이 미처 숨기지 못하고 기어코 훌쩍인 것이다. 정국 한정으로 예민한 지민이 되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는 정국에게 물었다. 


"감기야?" 

"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정  (0) 2016.09.29
지정  (0) 2016.09.25
지정  (0) 2016.09.25
지정  (0) 2016.09.25
지정  (0) 2016.09.25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