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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efii 2016. 9. 25. 01:38

 조금 유난이라고 느낄 때는 수도 없이 많다. 지나가면서 보는 물건이나 피부에 닿아오는 바람 온도 모든 것들을 연결지으며 속으로 얼굴을 그리면 얼굴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 좋아하는 마음이 주체가 안되네, 가방끈을 괜히 다시 조절하고 지하철에 올라타 문에 얼굴이 비칠 때 까지 지민은 내내 정국의 생각을 했다. 새카만 통로를 지나가는 동안 창에 비친 웃는 얼굴이 못생겨 민망함을 느꼈을 때 그때서야 겨우 생각하기를 멈췄다.

 듣고있는 수업은 매일이 같았다. 평소처럼 출력한 수업자료에 몇마디 설명을 메모하고 스크린에 띄워진 자료들을 보며 착실히 수업을 듣던 중 갑자기 교수의 말 한마디가 귀로 날아와 박힌다.

시간 지나면 모두 촌스러워 지금은 재밌고 세련되어보이지만 나중에 보면 또 유치해보인다고…

 그냥 흔하게 지나가는 말인데 왜 정국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지민은 사랑할 때 좀 더 유난인 사람이니까 의도 없는 말을 들으며 괜히 생각에 빠진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 촌스러워지는 재미없는 것 지금 이 감정도 나중에 보면 유치해질까. 사실 이미 제 행동을 생각해보면 당장도 유치하긴 했었다. 관심이 없는 것 같으면 섭섭하단 소리도 참지않고 늘 붙어있고싶고 마냥 귀엽고. 물론 어느 연애가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지금과 아주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다 이제 정확하게 설명 가능한 관계가 된지 겨우 일주일밖에 안된 이 시점에서 줄줄 이어나간 생각을 지우며 한가지 새삼 지겹도록 깨닫는 것은 자신이 또 정국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 생각한 복잡한 내용은 휘발되고 또 정국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는 사실만 남았다.
정신을 차린 지민이 괜히 페이지 구석에 펜으로 선을 몇번 그은 뒤 화면과 자료를 번갈아가며 다시 내용을 쫓았다. 슬라이드는 다섯개나 넘어가 있었다.


 정국과 만나기로 한 카페는 창문을 모두 접어서 열어놓을 수 있는 형태였다. 부드러운 나뭇결이 살아있는 블라인드가 살짝 내려와 지민과 정국의 얼굴에 빛줄기로 금을 냈다. 왜 이런데에 앉았어요? 그냥. 차마 햇볕받는 네 얼굴이 보고싶어서 라고는 말할 수 없어 지민은 제 앞의 커피를 집어들며 웃기만 했다. 눈이부셔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정국의 말에 결국 자리를 옮겨앉았다. 나란히 노트북을 키고 과제 자료를 찾다 지민이 입을 열었다.

"정국이 너 최 교수님 수업 듣는다고 그랬나"
"네 저 어제 수업이요"

 최 교수는 잡담마저 똑같이 하기로 소문이 났다. 그럼 네 수업에서도 시간 지나면 다 촌스럽다고 그런 얘기했겠네. 그런 소리야 모든 교수님들 맨날 지겹게 하는 말이잖아요. 그건 그렇지. 대답하느라 잠깐 마주친 얼굴에 말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생각을 담은 눈이 몇번 깜빡이다 다시 화면 아래로 떨어졌다.

 지민은 지나가는 말들에서 정국을 찾는다. 하루종일 사소한 것에서도 그를 떠올리고 세상 모든 일이 우리에 대해 떠들어대는 것 같다. 너도 나처럼 길을 걷다 괜히 멈춰 나를 생각할까? 지민이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국의 쏟아진 갈색빛 앞머리를 보며 생각했다. 집중하느라 저가 쳐다보고있는 것도 모르는 듯한 정국에 지민도 제 화면으로 눈을 옮겼다. 의미 없는 타이핑을하며 지민이 스스로에게 말한다. 아니어도 상관은 없겠지. 사실은 상관이 없기를 바라고 있지만 비밀이었다 자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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