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내가 실수하긴 했다. 술이 좀 취해있긴 했는데 형이 빨리 들어가라고 해서, 나는 그날따라 교수에게 듣지 않아도 될 소리를 들었고 조별과제엔 프리라이더가 뻔뻔히 단톡방을 나가고... 기분이 안좋아서 조금 과하게 투덜대며 대들다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말았다. "아 형 진짜 꼴도보기도 싫어요" 그래서 형이 뭐라고 그랬더라. 아무말도 안하고 입을 다물고 한참 나를 쳐다보다 딱 그렇게 말했다. 알겠어. 그리고 손에 쥔 편의점 봉투를 나에게 건네주고 돌아가는데, 봉투 안에는 숙취해소 음료가 들어잇었고 형은 이미 두번째 가로등까지 걸어가버렸다. 정말로 길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봐도 내 잘못이었다. 그런데 이건 좀 심한거 아닌가 싶었던건 그날 이후로 형이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화가나고 내 얼..
포장마차에 도착했을 때 이미 형은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고 잠들어있었다. 나는 형이 왜이렇게 약해졌나 생각해 본다. 꼭 예전에 비해 크게 성격이 죽은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안하던 짓을 했다. 항상 데리러 오던 사람이 반대로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하거나 되지도않는 심술을 부려 집에 일찍좀 다니라는 잔소리까지 하면서 나를 과보호하기도 했다. 아프면 마음도 병든다던데, 이렇게까지 신경이 예민해진걸 보면 몸이 더 안좋아진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이렇게 성격까지 변할만큼 아픈 사람이 술을 퍼마시고 뻗어있으니, 순간 머리가 지끈거려 잠깐 뒷목을 주무르다 일단 집에부터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엎어진 형을 업으려다 계산이 먼저인 것 같아 주머니를 뒤지고 있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역시나 싶은 얼굴..
연애, 해봤어요? 방 안에서 정국은 카메라를 마주보고 있다 지민은 카메라 너머의 불편해보이는 의자에 그마저도 불편한 자세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를 바라본다 정국은 카메라를 쳐다봐야하는지 지민을 쳐다봐야하는지 망설이다 카메라를 택했다 저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내린 선택이었다 "해봤죠" "얼마나?" "그냥 뭐…" 어려보이는데, 한 서너번이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묻는 지민에 정국이 속으로 얼굴을 떠올린다 손까지 꼽아가며 세어보는데 다섯번째 새끼손가락은 구부릴 수 없었다. 네번 맞네. 정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런 질문은 왜하시는거에요?" "캐릭터 쓸 때 좋을까봐요" "미리 정해놓으신 것 아니었어요?" "완전 백지에요" 시나리오도 없어요 사실. 그냥 등장인물이 다 죽는다라는 결론만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