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박지민이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게된건 우연이었다. 그때 그는 내 옆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여자친구와 있었고 나는 카페의 창문 하나 없는 구석에서 형에게 훈계질을 당하고 있었다. 별로 듣고싶지도 않았기에 대충 몇번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것들에 집중하다 그 커플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는데 마냥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헤어지려는 것 같았다. 그의 여자친구는 아이스 커피에 꽂힌 빨대를 몇번 만지작대다가 잡아서는 잔을 휘휘 젓고 못참겠다는듯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감상이 담긴 설명이다- 말을 꺼냈다. 둘의 대화가 조금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귀에까지 들릴 수 있었던건 그날 따라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곡들이 잔잔했고 여자의 목소리가 보통 사람에 비해 조금 큰 편이기 때문이다. "지민아 넌..
지민은 지금 과제를 해야했다. 마감일이 몇일 남지 않았고 수업은 전공이었으며 레포트의 비중은 꽤 컸다 그러나 집중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이 나라에 사는 모든 대학생이 그러하듯 하고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계는 새벽2시가 되어가고 있었고 켜놓은 구글과 논문검색 사이트는 메인페이지에서 넘어가지 않았다. 드르륵거리며 휠을 굴리는 지민이 켜놓은 페이지는 시덥잖은 게시글이 올라오는 게시판이었고 그와 마찬가지로 일을 미루고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 유치한 유머글을 올리거나 신세한탄을 작성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시한 표정으로 화면을 쳐다보던 지민의 손가락이 멈췄다. 별다른 말 없이 '랜덤 채팅' 이라는 단어 하나만 덜렁 써놓은 글이 위 아래로 길쭉하게 삐져나온 게시글의 제목 사이에서 무심하게 존..
하루가 길었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반 분위기도 뒤숭숭할 시기라 일부러 독서실까지 간 탓에 돈이 아까워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더니 어느새 새벽이었다. 독서실은 2시쯤엔 문을 닫는 곳이라 정국은 꼼짝없이 돌아가야 했다. 물론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진 않았지만 지난 한달 전부터는 집이 불편했고 가고싶지 않았다. 이게 다 새로 들어온 식구때문이다. 한달 전 정국의 엄마는 새로운 짝을 데리고 왔고 그는 어처구니없게도 자신과 나이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젊고 어린 남자였다. 새아버지가 될 사람이라며 처음 만났던 자리에서 정국은 그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뭘 바라고 우리 엄마랑 결혼해요? 그 말에 그 남자는 무슨 대답을 했더라, 어릴 때부터 가족이 없어서 다정하고 포근한 엄마가 좋다고 그랬던 것 같다...